[이건희 별세] 이승엽 3점 홈런 터진 순간, 병상서 눈 번쩍

중앙일보

입력 2020.10.25 11:37

수정 2020.10.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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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 만이다. 이건희 회장은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특히 야구사랑이 컸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해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에도 깊이 관여해 초대 구단주를 맡기도 했다. 지난 1993년 신(新)경영을 선언한 후 야구, 럭비, 골프를 '삼성의 3대 스포츠'로 지정했을 정도다.
 

1985년 프로야구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시상식이 끝난후 이건희 구단주를 헹가래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이건희 회장은 삼성 야구단의 초석을 닦았다. 선진 야구기술의 접목과 어린이 등 아마야구 저변 확대를 강조하면서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했는데 홈런왕 이승엽, 에이스 투수 배영수 등을 발굴했다. 또 삼성 2군 선수들이 쓰는 경산 라이온즈 볼파크는 이 회장이 준 선물이다. 옛 제일모직 직장 예비군 훈련장 터에 이 회장의 주도로 1987년 세워졌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사를 거듭하여 국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게 됐다. 
 
"일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S급 선수를 영입해 삼성을 2000년대 들어서 세 번(2002, 2005, 2006년)이나 우승하게 했다. 2002년 우승했을 때는, 삼성그룹 직원에게 "삼성야구단에서 경영을 배워라. 클린업 트리오라고 하는 핵심인력을 잘 운용한 것이 우승 견인차 역할을 한 것처럼 우수인재를 적극 개발, 각 업종이 세계 최고가 되도록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이 2011년에 다시 5년 만에 챔피언에 오르자 이 회장은 당시 류중일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삼성이 스포츠 각 분야에서 숱한 우승을 일궜지만 이 회장이 우승 직후 직접 구단 감독에게 축하전화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2014년 5월 25일 삼성이 11연승을 확정하는 극적인 순간, 의식이 없는 채 병상에 누워 있던 이 회장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대구 넥센전에서 3회 이승엽이 3점 홈런을 터뜨렸는데 이건희 회장도 떠들썩한 분위기에 잠시 눈을 떴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승엽은 "야구선수로서 굉장히 행복하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