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국인에게 집은 곧 성(城)이다(Every Englishman’s home is his castle).”
널리 알려진 이 영국 속담처럼, 모든 영국인에게 집이란 안식처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국을 대표해 한국에 와 있는 주한 영국대사에겐 관저가 곧 그의 성(城)이지요. 서울 한복판 정동에 자리 잡은 이 성에는 얽힌 이야기도, 볼거리도 넘쳐납니다. 중앙일보의 ‘시크릿 대사관’이 두드린 성문을 사이먼 스미스 대사가 활짝 열어줬습니다. 함께 들어가시죠.
대사관의 다른 건물 지하엔 금요일 저녁마다 한국 최고의 기네스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습니다. 주한 외교사절단의 사랑방 역할도 해왔죠.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빨간 벽돌 건물인 관저의 나이는 올해 118살입니다. 1890~1892년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쓰면서 주변에 다른 건물을 증축하는 방식으로 전통을 지켜왔다고 하네요. 한국과 영국이 수교한 1882년 이듬해, 당시 주일 영국대사였던 조지 애슈턴이 당시 100파운드를 주고 사들인 한옥이 모태입니다.
조선 망국이란 아픔, 식민지의 한(恨), 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한국의 고단하고 역동적인 근현대사와 함께 한 역사 유적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등장하는데, SIS의 초대 책임자인 조지 블레이크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 그는 북한군에 의해 평양으로 끌려갔고, 이후 소련을 위한 이중 스파이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서명 이후 영국으로 송환됐고, 그 뒤에도 소련 스파이로 암약했죠. 그러다 신분이 발각돼 수감됐지만 극적으로 탈옥에 성공한 뒤 러시아로 망명했습니다. 스미스 대사는 “아직 생존해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파티가 영국대사관의 대표적 행사인데, 이곳 정원에서 갓 튀겨낸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먹는 걸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영상을 통해 좀 더 감상해보시죠. 영상 속에선 스미스 대사가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깜짝 특기도 선보인답니다.
스미스 대사의 피아노와 트럼본 연주 어떠셨나요. 지금은 ‘아리랑’도 연주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부터 쳤는데, 트럼본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근무하던 시절 부인이 선물해줬다고 하네요. 스미스 대사는 “연습하느라 이상한 소리를 많이 냈는데, 아내가 잘 참아줘서 고맙다”며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관저의 응접실에 앉아 스미스 대사와의 이야기를 더 나눴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코로나19가 질문의 첫자리를 차지했습니다.
- 영국의 코로나19 사태는 어떤가. 한국과의 협력은 어땠는지.
- 한국 정부와 보건 당국에 (주한영국대사관 측에서) 질문을 수백까지는 했던 것 같다. 한국 측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 새롭고 차별화한 대처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걸 가히 ‘코비드(코로나19) 외교’라 부를만한데, 이젠 우리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서로의 경험과 교훈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두고 영국과 EU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고, 시한은 명확하다. 올해 12월 31일로 브렉시트를 이뤄낸다는 것이다. EU와의 합의문에도 들어가 있고 여전히 유효한 딜이다. 협상이 실패해 노딜(no deal)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건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영국 정부는 앞으로 EU와 무역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스미스 대사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며 보여준 기념패가 하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지요.
이 기념패를 소중히 들어 보이며 사이먼 대사는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6ㆍ25 발발 70년째가 되는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영국은 한국을 위해 참전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참전국에 보낸 기념패를 보내줬습니다. 영국과 한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소중한 이웃입니다. 양국 관계가 앞으로도 더욱 돈독히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영상=여운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