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벌의 옷이 새로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버려지고 있어요. 지구를 살리기 위해 패션 디자이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86)씨의 말이다. 그는 최근 코오롱FnC의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흥미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래코드는 자사 내 버려지는 재고의류들을 해체한 후 재조합해 전혀 색다른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지난 2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초청받아 진태옥 디자이너와 함께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코로나19로 전시가 취소되면서 서울 이태원에 있는 남성복 매장 ‘시리즈코너’로 전시 공간을 옮겼다.
“처음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낯설지만 해볼 만하다 생각했어요. 정말 쉬울 줄 알았거든요. 있는 옷 뜯어서 이리저리 다시 붙이기만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면도칼로 청재킷 하나를 해체하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거예요. 직접 뜯어봐야 이걸 어떻게 재활용할지 가늠이 되니까 하긴 해야겠는데, 어느 순간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이걸 뜯고 있나’ 짜증이 나더라고요. 하하.”
“견고한 분위기의 남성재킷에 부드러운 벨벳 소재를 얹어서 극과 극의 감성을 만나게 한 거죠.”
진씨는 그렇게 익숙한 재료들을 사용했지만 옷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율과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진씨는 디자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고민할 만큼 리사이클 작업에 푹 빠졌다고 했다. 동시에 “K팝 스타들이 한국 디자이너가 만든 리사이클 옷을 입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고 한다.
“지구 전체를 몇 십 겹 에워싸고도 남을 만큼의 옷이 그냥 버려져 땅에 묻히는데 이게 썩지도 않아요. 리사이클 패션은 전 세계 인류의 숙제에요. 누군가는 이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알려야죠. 저 같은 디자이너 한 명의 힘으론 어렵겠지만 BTS·블랙핑크 같이 영향력 있는 가수들이 함께 글로벌 캠페인을 벌인다면 파급력은 크겠죠. 사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블랙핑크 멤버들을 어떤 디자인의 옷으로 어떻게 입혀야할지 다 계획이 서 있어요. 이제 연락만 오면 되는데. 하하.”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래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