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는 7쪽에 달하는 자료에서 요동치는 전세 시장의 이유를 딱 짚었다.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은행이 불가피하게 기준 금리를 인하하였으며, 이는 전셋값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다 하다 이젠 코로나와 한국은행 탓까지 나왔다.
[현장에서]
임대차법 부작용 외면하는 국토부
저금리 탓에 전세시장 불안하다는데
거론되는 전세난민 사례들에 선긋기
"일부 자극적인 사례, 도움 안 된다"
시장은 이런 전세 절벽의 이유로 정부와 여당이 벼락처럼 통과ㆍ시행시킨 임대차보호법(계약갱신청구권ㆍ전월세상한제)을 꼽는다. 심의 과정을 생략하고 법사위 전체 회의 상정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28시간 만에 뚝딱 해치운 임대차법의 부작용이라는 진단이다. 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의 ‘5분 연설’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다. 그는 당시 브레이크 없는 국회에서 임대차 3법을 조목조목 비판한 연설로 주목받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홍길동씨'로 여러 번 등장한 홍 부총리의 사례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새로운 집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국토부의 설명대로라면 홍 부총리는 저금리가 갑작스레 촉발한 전세 시장 불안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차인들이 낮은 금리를 지렛대 삼아 더 좋은 상급지로 이동하려고 해서 전세 시장이 불안해졌고, 홍 부총리는 그 바람에 전세 난민이 됐으며, 서울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처럼 전세 매물 구하려면 줄을 서고 제비뽑기를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급등한 집값이 화제가 되는 시대다. 배우 김광규 씨가 MBC ‘나 혼자 산다’에 나와 “집값 내려간다는 말을 믿고 안 샀다가 4년 뒤 따블(더블)이 됐다”며 울분을 토할 때 거짓말이라고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집 못 산 자'(김광규)와 '집 산자'(하석진)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러움의 반응이 갈릴 뿐이다.
시장의 아우성에도 정부의 대응은 한결같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국토부는 “일부 자극적인 사례 또는 검증되지 않은 (임대차 3법으로인한) 공급위축론으로 불안 심리를 부추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7월 집값 폭등에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국회에서 서울 아파트값은 14%만 올랐다고 누차 말했다. 정부 공식 통계를 근거로 들면서다. 주택가격 관련한 국가 승인 통계 중 가장 상승률이 낮은 매매가격지수 상승률만 골라 고집했다.
집값이 치솟았다는 것은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정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고집을 부려봤자 정책의 신뢰성만 바닥을 칠 뿐이다. '고집불통 정부'의 대책에 시장 왜곡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대책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며 공무원에게 복지부동을 주문하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시대가 됐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on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