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무라 간사장은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지한파 중 한 사람으로, 일본 언론에 따르면 방한 직전인 16일 오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를 총리관저에서 만나 방한 계획을 보고했다. 따라서 그의 방한 기간 중 한·일 관계에 대한 스가 총리의 메시지가 한국 측에 전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스가 총리 만난 뒤 2박3일 방한
문희상안 언급, 관계개선 논의
여야 대표, 정보기관 수장까지 만나
이낙연 “지혜 짜내자는데 의견일치”
김종인 “관계 빨리 회복하자 하더라”
가와무라 간사장은 18일 오전 국민의힘 김 비대위원장과 회동했고 오후엔 박지원 국정원장, 김진표 회장,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잇따라 만났다.
관계자들의 전언 등에 따르면 이들과의 회동에서 가와무라 간사장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시했던 소위 ‘문희상 안’을 언급하며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희상 안’은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의 기부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로, 문 전 국회의장이 관련 법안까지 발의했다.
지한파 가와무라, 한·일 관계 풀 ‘스가 메시지’ 들고 왔나
가와무라 간사장은 지난 16일 스가 총리와 면담한 뒤 일본 기자들에게 “일본은 한국에 징용 문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며 자신의 방한에 대해선 “한국 측이 해결책을 마련할 용의가 있는지, 대응책은 있는지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런 그가 한국 측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문희상 안’을 재차 강조한 걸 두고 한·일 관계 소식통은 “징용 재판과 관련해 한국 법원에 의해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이 현금화되기 전에 한국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 달라는 일본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일본 매체들에서 “한국이 징용 문제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스가 총리가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방한하지 않을 것”이란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와무라 간사장이 한국 측 기류 탐색에 나섰다는 관측도 있다.
기자 시절 도쿄특파원을 지낸 민주당 이 대표는 대표적인 지일파 정치인이다. 가와무라 간사장의 지난해 9월 방한 때도 당시 총리였던 이 대표가 따로 오찬을 함께 했다. 18일 국회에서 40분 동안 만난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 대표는 면담 뒤 기자들에게 “한·일 현안에 대해 당국 간 적극적으로 협의하자, 서로 지혜를 짜내자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스가 총리가 지난 17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의 가을 제사에 공물을 보낸 것에 대해 가와무라 간사장에게 유감을 표명했다고 이 대표는 소개했다. 이에 가와무라 간사장은 “한국과 중국의 비판은 잘 알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부터 이어 온 관례다. 스가 총리도 관방장관 시절엔 안 갔지만, 총리가 되니 전임 총리가 한 것을 계승하고 있다”면서도 “양국의 비판은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고 이 대표가 전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결선투표를 앞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지를 요청하자, 가와무라 간사장은 “아직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할지 결정되지 않았다”며 “이 대표로부터 그런 요청이 있었다는 것을 접수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와무라 간사장의 일정 중엔 정보기관을 이끄는 박 원장과의 회동이 특히 이례적이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박 원장은 지난해 8월 한·일 관계 경색 국면을 뚫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니카이 간사장과 5시간30분 동안 비공개 만찬 회동을 하기도 했다. 가와무라는 그런 니카이가 이끄는 자민당 니카이파에 소속돼 있다. 18일 회동에선 두 사람 사이에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고, 박 원장도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WTO 사무총장 결선투표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일 관계 소식통이 전했다.
서승욱 정치에디터, 손국희 기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