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이 총재를 연임시키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문 대통령이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재 지명 직후 브리핑에서 “이 총재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요 국가들은 중앙은행 총재가 오래 재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펼치도록 한다. 이 (총재) 후보자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관해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을 갖췄다”며 박 전 대통령이 이 총재를 지명한 배경을 설명했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중앙일보에 “문 대통령이 능력만 보고 ‘전 정권 사람’을 연임시킨 것”이라며 “전 정부 인사 중 문 대통령의 발탁으로 빛을 본 케이스가 여성 중에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라면, 남성 중에는 이주열 총재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연임 직후인 2018년 11월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로 선출됐다. 이사회는 주요국 중앙은행 60곳이 참여하는 BIS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한은 총재가 이사를 맡은 것은 1997년 한국이 BIS에 가입한 이후 처음이다.
이 총재는 지난 13일에는 미국의 금융전문 월간지 글로벌파이낸스가 매년 발표하는 중앙은행 총재 평가에서 2018년 연임 이후 3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등급은 A-였다. 일본은행 총재는 B등급, 중국 인민은행장은 C등급이다.
문 대통령은 이 총재와 한은에 대한 신뢰를 여러 차례 표현했다.
문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도 이 총재에게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던 지난 3월 1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비상 정부체제로 전환한다”며 “방역 중대본처럼 경제 중대본의 역할을 하게 될 비상경제회의를 가동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 “50조원 규모의 특단의 비상 금융 조치를 결정한다. 이번 조치를 결정하는데 한국은행이 큰 역할을 해줬다”고 강조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마무리 발언에서는 이 총재에게 직접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도 이 총재의 연임 이후 통화 스와프와 관련해서도 국제금융 시장에서 확실한 영향력을 가지게 됐고 국제무대에서 발언력과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점에 대해 언급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개각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개각을 너무 자주 한다”, “장관을 너무 자주 바꾼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2011년)에서 “법무장관은 적어도 2년, 가능하면 대통령과 임기(5년)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적도 있다.
이 총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와 독립성 보장이라는 태도와 달리 여당 의원들은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총재에게 집중포화를 가했다. 이 총재가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정부의 재정준칙에 대해 14일 “장기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한 반발이었다. 재정준칙은 국가 채무 비율을 국내 총생산(GDP)의 60%, 통합 수지 적자 비율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여당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많이 당혹스러우실 것 같다. 한은이 계속 독립적 목소리를 내셔야 한다”며 이 총재를 격려했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도 “혼이 나더라도 당당해야 국민들이 한국은행 엘리트집단을 따라간다. 고용 문제나 금융 문제나 당당하게 보고서를 내고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