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유전자치료 센터 소장으로 부임한 짐 윌슨 교수는 요소 회로 이상 질환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크 뱃쇼 교수와 함께 정상 오르니틴 트랜스카바미라제 유전자를 아데노바이러스에 담아 이 아이들에게 주사하여 조물주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담대한 계획을 세웠다. 동물실험을 마무리한 연구팀은, 1997년 환자를 대상으로 제1상 임상시험을 드디어 시작했다. 당시 열 일곱 살이었던 제시 겔싱어는 망설임 없이 이 연구에 자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제시 간세포의 일부는 정상 효소를 가지고 있어 단백질을 적게 먹고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면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연구에 참여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구에 참여해서)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뭘까? 죽는 거겠지. 그렇지만 그 아이들을 위해 죽는 거야.”
이해충돌의 영향 방지하려면
이해관계 투명하게 밝히고
가능하면 아예 피하는 게 최선
어떤 사람에게 맡겨진 공식적 임무가 개인적인 이익과 부딪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이해충돌’이라고 부른다. 윌슨 교수의 경우 주주로서의 개인적인 이익이 엄정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할 연구자로서의 임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첨예한 이해충돌 상황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이런 갈등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의학 연구자들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후원자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다든지, 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든지,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자한다든지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이해충돌 상황이다.
요즘 자주 논란이 되는 ‘부모 찬스’도 물론 그렇다. 의학계가 이해충돌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는 정책은 당사자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사실대로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좋은 방법은 물론 이해충돌을 아예 피하는 것이다. 미국 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 와인 칼럼니스트들의 다짐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는 공짜로 와인을 받거나 여행 경비를 지원받거나 식사 대접을 받지 않겠습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행사에만 참석할 것이며, 와인 제조업자들이 뉴욕을 방문한다 해도 만나지 않겠습니다. 모든 와인을 소매점에서 구입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지면에 밝히겠습니다. 상표를 가리고 와인을 시음할 것이며, 혹시 그렇지 못했다면 역시 밝히겠습니다. 우리는 와인이 스스로 진가를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이해충돌에 놓일 수 있다.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해도 오해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와인 칼럼니스트들의 다짐을 명심하자.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