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당대표가 튈일 있나···국감 분위기 확바꾼 ‘이테일’ 이낙연

중앙일보

입력 2020.10.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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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뉴스1]

 
지난 8일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에게 “제가 주 질의를 못 했다. 시간을 더 주시겠냐”고 요청했다. 전날 오전 질의 차례를 기다리다 허탕을 친 뒤, 오후 당대표 일정으로 국감장에 돌아오지 못한 그가 보충 시간 배분을 주장한 거다.
 
질의 시간 7분을 얻자마자 이 대표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준비해 온 체크리스트 세 가지를 점검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외교 참모 또는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대선 전에라도 접촉할 계획은 갖고 있나”, “내년 1월 북한 당대회 후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 정책이 어느 쪽으로 수정될 거로 보고 있나”, “올 4월 미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를 지적한 UN 인권보고서가 실제 미국에 영향을 주고 있나.”
 
앞서 탈북자 관리 문제, 조성길 전 북한 대사 대리 입국 공개 등 국내 현안에 집중되던 분위기를 180도 바꾸는 질문들이었다. 갑자기 화제 전환을 맞은 이 장관은 첫 질문에 “통일부는 통일부 나름대로 주시하고 탐문하고 있다”고 했다. 뒤이어 이 대표가 “(북한이 당대회를) 보통은 4, 5월에 하는데 (1월로) 당겼다고 하지 않나”고 묻자 이 장관은 “(북한이) 최근에 ‘80일 전투’ 이렇게 얘기하는 거로 보면 1월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답했다. 
 

되살아난 '이테일'

2018년 7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1호기’를 타고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당시 이 총리는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중동 오만을 공식 방문했다. [뉴스1]

 
국감에서 세부 현안 숙지를 확인하며 중장기 대응을 지적하는 이 대표 모습은 총리 시절 관가에서 ‘이테일(이낙연+디테일)’로 불렸던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질문 장면을 본 한 공무원은 “국회 국감이 아니라, 흡사 총리나 대통령이 장관에게 보고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19대 국회 이후 7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이 대표는 이번 국감에 적잖은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한 보좌진은 “당대표 직무와 별개로 국회의원으로서 국감 임무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라며 “대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국감 질의에 최대한 참석해 분석자료, 질의서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13일 말했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도쿄특파원을 지낸 이 대표는 12일 이수혁 주미대사를 상대로 “스기야마 주미 일본 대사를 만나실 때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한가”라고 했다. 또 “워싱턴 차원에서, 두 분 레벨에서라도 한일 협력이 모색되었으면 좋겠다. 한일 모두 미국 정권교체기에 현지 싱크탱크 외교 참모들과의 접촉이 많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했다. 이 대사는 “스기야마 대사와 지난 일주일 새 두 번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했다”고 답했다.
 

외교·안보 전문성 강조 

2019년 10월 연미복을 입은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대기하던 중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총리실]



초·재선들이 튀는 말과 행동으로 국감장에서 인지도·주목도 상승을 노린다면, 5선 당대표인 이낙연의 국감 전략은 외교·안보 분야에 전문성을 드러내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중국·몽골·중동·서남아시아·아프리카 등을 두루 순방했다. 2019년 10월에는 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일왕 즉위식에 참석했다. 당시 그의 외교 자질을 인정한 문 대통령이 “총리의 순방외교를 투톱 외교라는 적극적인 관점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외교·안보 이해 역량은 차기 대권 주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라는 말이 나온다. 북핵, 국제관계 등 난이도 높은 사안을 다루는 외통위는 국회에서도 주로 다선 의원이 포진한다. 12일 외통위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 선언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자 이 대표는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공동성명과 6·23선언,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불가침선언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야당을 향해 “제발 우리 서로 과거의 업적, 성취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