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을 연계시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수용 가능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한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한·일 정상회담으로 연계시켜 대응했던 것과 같은 전략이다.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외교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랬던 일본이 똑같은 방식을 역으로 들고나오자 "자가당착"이란 지적이 나온다.
日 관방 "한국에 해결 방안 요구"
한·중·일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도
스가 정부, 첫 스텝부터 강경노선
◇"현금화 조치 못 막으면 정상회담도 없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3개국이 돌아가며 개최하고 있다. 직전 회의가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렸고, 이번이 한국이 개최할 차례다. 정부는 '한·중·일 정상의 연내 대면 회의'를 기본 방침으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 자산 압류와 현금화 절차를 앞두고 일본이 두 문제를 연계시키는 '원트랙(One-track)' 전략을 들고나온 것이다.
교도통신은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를 미루는 대신, 3개국 외무성 국장급 회담을 하는 방안도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통상 한·중·일 정상회의를 위해 '실무자급 - 부국장급 - 차관보급 고위관료(SOM) 회의 - 외교장관 회의 - 정상회의'의 절차를 밟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국장급 회담은 다소 뜬금없는 제안이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사실상 "현금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약속이 없다면, 정상회의 참석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첫 스텝부터 '강경노선' 스가 정부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는 등 '강제징용 문제 해결 없이는 모든 현안 논의는 올스톱'이라는 아베 정부의 외길전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베 총리를 만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2년 8개월 동안 만남을 거부하자 이를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현금화에 대한 조치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는 일본의 입장은 자가당착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보폭을 줄이고 우리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중·일 정상회담 무산될까
그러면서 “일본 기업 압류 자산 현금화에 이르면 한일관계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며 "한국 측에 일본 측이 수용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정부가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작다.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일본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 '한·중·일' 회의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지는 만큼 내년으로 회의를 순연해 한국에서 다시 추진할지 등은 3국이 다시 논의해야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중·일 정상회의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순서대로 개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화상회의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스가 총리가 화상회의에 참석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원덕 교수는 이에 대해 "당장의 현금화 조치를 유보할 수 있는 제3자 공탁 및 대의변제 후 구상권 청구 등의 조치를 한 뒤 중장기적으로는 국회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등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