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종전선언' 외쳤지만, 北은 한·미 때릴 정밀 타격무기 내놨다

중앙일보

입력 2020.10.11 15:27

수정 2020.10.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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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각종 최신 무기체계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 무기 증강과 함께 북한군의 재래식 전력이 급속도로 현대화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방사포, 대구경조종방사포 등 여러 종류의 무기를 게재했다. 사진은 이날 열병식에 등장한 22연장 방사포(다연장로켓포)의 모습이다. [뉴스1]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군의 무기 세대교체가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가 최근까지도 '종전선언'에 명운을 걸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외치는 사이, 북한은 핵전력은 물론 남한 땅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정밀 무기체계까지 발전시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CBM·SLBM뿐 아니라 재래식 전력도 급속 발전
"북극성-4A, 신형 잠수함 개발과 관련 있어"
"남한 어디든 타격 가능한 야전무기 다양"
미군 장갑차·전차 모방해 기갑전력 현대화

ICBM 사거리 늘고 다탄두 가능성

북한은 이번 심야 열병식을 통해 신종 무기체계를 대거 선보였다. 특히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신형 ICBM과 SLBM을 공개했다.
 
신형 ICBM의 경우 기존 화성-15형(사거리 1만3000㎞, 탄두 중량 1t)과 비교해 직경과 길이가 커져 사거리가 늘고 탑재할 수 있는 탄두 중량도 커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사일을 싣고 이동하는 발사대(TEL) 바퀴 수만 봐도 기존 9축(18개)에서 11축(22개)으로 늘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신형 ICBM은 탄두 형태로 봐선 '다탄두 탑재형'일 가능성이 있다. 열병식을 앞두고 미국 전문가 등이 예상했던 고체 연료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보다 상대적으로 발사 준비시간이 짧아서 사전 징후 포착이 어렵다. 또 TEL에 싣고 동시다발로 발사하면 방어가 더 까다롭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중대 시험'이라고 발표했던 추력이 향상된 액체엔진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했다. 류성엽 21세기 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신형 ICBM 측면에 흰색 사각형 표시는 연료·산화제 주입구로 의심된다"며 "현재까지 북한이 중점 개발하는 것은 액체연료 기반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군도 비슷한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군 관계자는 "북한이 ICBM용 고체연료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신형 ICBM의 겉모습만 봐선 전술적으로 운용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다탄두를 구현하기 위해 엔진을 늘리다보니 무게가 100t 전후(화성-15형은 60t 정도로 추정)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의 운용 사례를 보면 이 정도 무게로는 TEL에선 발사할 수 없고 지하 사일로(고정형 발사대)에 넣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게를 줄이기 위해선 고체연료 엔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북극성-4A의 전략적 목표는 괌?

이번에 처음 공개된 SLBM 추정 북극성-4A형을 두고 전문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수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3000t급 잠수함(로미오급 개량형)이나 북한이 새롭게 개발 중인 신형 잠수함(4000~5000t급) 탑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 북극성-3형(사거리 3000~4000㎞)보다 직경이 커졌는진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만일 커졌다면 사거리가 향상됐을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재래식 잠수함이 가진 한계를 어느 정도 커버할 수도 있다.
 

1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 전날 북한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현재의 북한 잠수함 전력으로는 원해로 나가는 것은 노출 가능성도 높고 큰 부담일 것"이라며 "북한 근해에서 SLBM을 발사하려면 사거리를 실효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권 교수는 또 "북극성-4A형은 형상이 중국의 다탄두 SLBM JL-2(쥐랑-2, 사거리 7000~8000㎞)와 유사해 보인다"면서도 "크기가 북극성-3형과 비슷하다면 쥐랑-2와 달리 전략적 목표는 미국령 괌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궁극적인 SLBM 개발 목표가 '미 본토 타격'인 만큼 쥐랑-2 수준으로 개발을 계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밀 타격력 향상…미군 무기도 모방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열병식에서 선보인 전술 무기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핵전력 강화에 신경 써온 북한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재래식 무기들을 빠른 속도로 정비하는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무기들은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용 전략무기와 달리 한국을 직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그동안 시험 발사 등을 통해 한국군을 긴장시켰던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에이태큼스(ATACMS)' 탄도미사일, 초대형 방사포(다연장로켓포의 북한식 표현) 등은 남한 전역이 사정권이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각종 로켓에 정밀유도장비를 갖추는 등 야전 포병의 정밀 타격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며 "한반도 전구 내에선 어디든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열병식에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기갑 전력의 현대화도 눈에 띈다. 북한군은 기동성과 화력이 뛰어난 미 육군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닮은 장갑차 2종을 공개했다. 각각 115㎜ 전차포,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한 채였다.
 
또 열병식엔 미 육군의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연상케 하는 신형 전차도 나왔다. 신형 전차는 에이브럼스 전차와 마찬가지로 시가전에 특화된 장비를 장착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북한군이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차세대 방어 개념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0일 녹화 방송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150mm 자주포의 모습. 외형상으로 보면 남측의 K-9 자주포를 연상케한다. [연합뉴스]

이런 모습은 러시아제나 중국제 무기를 모방하던 기존 북한군의 모습을 탈피한 것으로, 재래식 무기 현대화에 대한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이와 관련, 양 교수는 "육·해·공에서 모두 발사할 수 있는 '핵 3원(nuclear triad)' 전력을 확보한 북한이 재래식 무기를 현대화하는 것은 일반적인 핵보유국의 무기 개발 순서와 일치한다"며 "김정은 정권이 앞에선 평화 무드를 조성하면서 이런 무기 개발에 전념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 "새롭게 공개된 북한의 무기체계에 대해선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라면서 "다만 군사력을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입장에 주목하며, 9.19 군사합의의 완전한 이행 등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에 호응할 것을 요구한다"고 11일 밝혔다.
 
익명을 원한 군 고위 관계자는 "무기체계의 외양만 봐선 실제 성능을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개발 속도가 빠른 만큼 이대로 북한의 전략 무기 외에 전술 무기 개발을 방치하는 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기 개발의 돈줄이 어디인지, 기술과 장비를 어떻게 확보하는지 추적해 차단해야만 한다"고 했다.
 
이철재·김상진·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