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있는 자리는 원래 경복궁의 영역이었다. 경복궁의 후원이었던 이 터에 고종은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이라는 전각을 지었다. 고종 5년인 1868년, 임진왜란으로 전소한 경복궁을 복구하면서 고종은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새로운 미션을 부여했다. 조선의 국가 운영의 기본원칙과도 같은 문과와 무과를 융성하게 해라. 즉 인재를 뽑는 장소로 썼다. 과거시험을 치르거나 무술대회를 열었다. 현재 청와대 상춘재와 녹지원이 있는 자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종은 융문당과 융무당이 있는 자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청와대라는 명칭 관련 논란도 있다. 격 높은 건물에 청기와를 쓴 전통이 있다 하여 청와대가 됐다는 것과 옛 총독관저의 지붕에 청기와가 얹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일제 잔재의 명칭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집무공간이 국민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곳이 없다. 청와대가 도시 중심부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총리관저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시내 한복판에 있듯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선되기 전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청와대가 과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국민 속에 있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도 했다. 하지만 백지화됐다. 그리고 소통의 상징이던 광장은 차벽으로 닫혔다. 개천절에는 청와대 가는 길목마다 경찰이 검문하기도 했다. 2020년의 청와대는 더 외따로, 멀리 있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