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얼빠졌다”는 지적은 조세연 보고서의 결함에서 촉발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세연의 70페이지 분량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 원문을 입수·분석한 결과 조세연은 “특히 지자체 총생산(GRDP)의 1%를 지역화폐로 발행하면, 지역화폐 관련 산업군 총 매출액은 1.9% 감소한다”고 밝혔다. 지역화폐 발행이 오히려 0.9%포인트 경제 침체를 불렀다는 것인데, 조세연은 특정 지자체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가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처럼 인접한 다른 지역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불붙은 지역화폐 효과 논쟁]
지역화폐 “비용만 추가” vs “효과 있다”
조세연 연구결과는 정부기관(행정안전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지행연)의 결과와도 달랐다. 지행연은 지난해 낸 ‘지역사랑상품권 전국 확대 발행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지난해 1~8월 발행한 상품권 1조8025억원의 생산유발액이 3조2128억원(자기 지역 1조1074억원), 부가가치유발액이 1조3837억원(자기 지역 5332억원)이라고 분석했다. 지역화폐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1.9% 매출 감소였다는 조세연과 다른 결과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는 “-1.9% 매출 감소 수치는 보고서 통계상 영향이 없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고 했다.
조세연, 유통대기업 시각에서 분석했나?
경기도 관계자는 “경기도의 경우 지역화폐를 카드로 발행하는데, 비용은 카드 발행업체가 부담하고 결제 수수료 수입으로 충당하는 방식이라 경기도가 카드 발행에 투입하는 비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부분 지자체가 지류형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양시는 체크카드처럼 결제되는 선불·충전형 지역화폐 ‘고양페이’를 발행하고 있고, 성남시의 자체 지역화폐 ‘성남사랑상품권’은 카드형, 모바일형이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는 QR코드 방식을 적용했다. 지난해 말 기준 형태별 발행액은 카드, 지류, 모바일 순이었다.
조세연이 보고서에 담은 “지역화폐는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 소형 매장으로 사용처가 제한돼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도마에 올랐다. 조세연은 “동네 마트 및 전통시장의 경우 대형마트보다 물건 가격이 평균적으로 비싸고 제품의 다양성이 떨어져 소비자 후생이 감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타 지역이 아닌 자기 고장의 소비를 촉진하는 측면과 중소상공인 매출증대 지원을 통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유통공룡으로부터 지역소상공인들을 보호하는 측면 두 가지가 있다”면서 “유통대기업을 보호하려는 것이냐”라고 질타했다.
“보고서와 현장은 다르다” 지자체 반발 격화
은수미 성남시장은 9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역화폐는 소상공인의 매출 증가부터 고용효과까지 매우 긍정적이며 만족도도 큰 걸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가천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매출 효과 경험 60.3%, 지역경제활성화 관계 여부에 대한 긍정 응답이 58.3%,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필요 여부 긍정 응답이 64.3%에 달했다는 것이다. 은 시장은 이어 “2018년 9월부터 아동수당을 지역화폐카드로 발행, 200억원 규모였던 지역화폐가 2019년 948억원으로 늘어 경제적 효과의 증대 역시 예상한다”며 조세연 연구를 반박했다.
부산시는 조세연 연구결과가 수도권 중심적 사고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부산시 지역화폐 정책위원은 “부산의 경우 역내 소비액의 70~80%가 수도권으로 흘러 들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화폐가 도입됐다”며 “수도권으로 돈이 집중되는 기형적 구조를 외면한 채 지역화폐의 역기능만 부각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경상북도 구미시에선 시민단체가 지자체의 입장을 변호했다. 구미경실련은 9월 21일 성명을 내고 “지역화폐는 자영업 경기를 활성화하는 정책”이라며 “시민 호응을 반영해 지역화폐 발행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 상반기 230개 지자체 지역화폐 발행
지역화폐는 꽤 오래전인 1997년생이다. 당시 정부는 경제 위기 이후 지역상권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강화, 실업 구제 등의 목적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했다. 당시 한 모임에서 ‘미래화폐’를 만들면서 최초의 지역화폐가 등장했다. 이후 서울 송파구의 ‘품앗이’(1999), 대전시의 ‘한밭레츠’(2000) 등으로 전파하면서 2000년대 초반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지자체가 72곳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지역민의 일상생활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카드 형태 등의 지역화폐가 늘고 사용도 편리해지면서 지역화폐의 입지가 달라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경기도 안산시는 지난해 4월 발행한 상품권 형태 지역화폐 ‘다온’을 내놓은 지 한 달여 만에 40억원가량을 판매했다. 제천시는 같은 해 3월 지역화폐 ‘모아’ 발행을 시작해 한 달여 만에 16억원을 판매했다. 올해 지역화폐의 인기는 더 뜨겁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재정 지원을 각 지자체가 지역화폐로 썼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총 230개 지자체가 6조원 규모 지역화폐를 발행, 이중 96%인 5조8000억원이 팔렸다. 인천광역시와 경기도의 지역화폐는 1조원 넘게 판매됐다.
효과성 논란이 연구원 간 갈등으로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연구단장은 “지역화폐가 경제적 부담만 클 뿐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조세연 보고서는 지역화폐가 주는 소상공인·자영업자·골목상권 활성화 효과는 간과하고 있다”면서 “지역화폐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넘어 지역화폐 발급으로 골목상권 활성화를 뒷받침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뒤집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조세연 연구가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할 중대한 사안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국책연구기관이 정부 국정운영에 대해 혼선을 야기하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회 예산처 “지역화폐, 국가 전체론 손해”
하지만 조세연 보고서와 비슷한 방향의 의견도 있다. 정부 재정 운용을 평가하는 국회예산정책처(예산처)는 지난 6월 ‘2020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과 관련해 “지자체 입장에서는 타지역으로의 소비 유출이 차단돼 지역 내 자영업체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국가 단위에서 보면 소비지출 총액은 동일하면서 상품권 발행 및 유통에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비용만 추가 지출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산처는 특히 “지역화폐로 인한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려면 지역화폐 사용에 따른 편익으로 자체 수요가 발생하고 공급이 이루어져야 하나, 지금은 재정을 투입하여 할인율을 상향함으로써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며 “역내 소비진작 효과 자체가 지자체의 규모와 재정력에 따라 결정되고 있으며, 상품권 발행 자체가 지방 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화폐는 사용처가 제한돼 있어 현금보다 불편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액면가보다 싸게 팔아야만 유통되기 때문이다. ‘할인 판매’로 인한 손해는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세금으로 부담하고 있다.
실제 지역화폐는 ‘화폐’라는 이름과 달리 정부가 사실상 현금을 나눠주는 재정정책이 됐다. 지자체가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 상품권이나 선불카드를 충전 시 10%를 돌려주는데 10% 할인의 재원을 중앙정부가 같이 나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할인 비용의 25%를 중앙정부가, 75%를 지자체가 내지만, 지난 3월 1차 추가경정예산에는 정부가 6월까지 62%를 부담하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 6조원 규모의 지역화폐가 발행된 것을 고려하면 중앙정부는 보조금으로 3603억원 예산을 사용했다. 발행액 6조원의 10%인 6000억원의 62%를 부담한 탓이다.
5년간 150배 증가 지역화폐, 중간평가 필요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