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개정안 시행 후 2021년 어느 날
낙태한 여성은 상속권 상실
정부는 낙태 허용 시기와 인정 사유를 확대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8일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임신 14주까지 조건 없이 낙태가 가능하고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을 경우 최대 24주까지도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후속조치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낙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들은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상속 문제’가 있다. 현행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낙태한 여성은 합법적인 낙태 여부와 무관하게 남편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상실한다. 민법 1004조는 ‘상속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에게 상속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어 민법 1000조는 태아에 대해 ‘상속순위에 관하여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앞으로는 형법상 처벌받지 않지만 상속권을 잃는 모순적인 상황이 지속할 전망이다. 이동성 변호사(법무법인 장한)는 “현행법상 남편이 사망하면 부인과 자녀가 1순위 상속인이 된다”며 “낙태를 할 경우 부인은 상속결격자가 되므로 남편의 재산은 시부모나 다른 후순위 상속자에게 넘어간다”고 말했다. 고윤기 변호사(로펌 고우)는 “이번 개정안은 형법과 모자보건법에 한정하기 때문에 상속결격 사유에 대한 추가 조치가 없는 한 낙태 여성이 ‘남편의 상속권자를 살해한 자’에 해당하는 민법과 판례상 해석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낙태죄 존치로 보복 우려 여전
실제로 낙태죄를 이용해 여성을 위협하거나 압박한 사례가 적잖다. 지난 2012년 여성 B씨는 뱃속의 태아를 낙태한 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돈 문제로 갈등을 빚던 남자친구 이모(30)씨가 사이가 틀어지자 B씨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재판에서 “자신은 낙태에 반대했었다”고 주장했고, 결국 B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장모(20)씨는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자 전 연인을 낙태죄로 고소했다. 법원은 여성에게 선고유예형을 내렸다.
남성도 낙태를 강요하거나 동의하면 낙태 교사·방조죄로 처벌받지만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태현 변호사(법무법인 천명)는 “남성은 명시적으로 낙태에 동의했다는 게 입증되어야 공동정범이나 교사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며 “낙태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거나 증거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에서 낙태 방조죄 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성계, “개정안 다시 수정되어야”
7일 입법예고 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앞으로 4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해 국회에 최종 법안으로 제출될 예정이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