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 '50억 이상 내부거래' 준법위 승인 반드시 거친다

중앙일보

입력 2020.10.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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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52) 부회장이 '준법'을 경영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가운데, 삼성이 내부거래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50억원 이상 규모의 계열사 간 내부거래일 경우, 윤리·준법경영을 감독하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사전 승인을 통과해야만 한다. 준법위 출범 이후, 삼성에 생겨난 변화다.
 

삼성, ‘기업규제 3법’ 통과 앞서 법률 리스크 점검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50억원 이상 내부거래에 대해선 윤리ㆍ준법경영을 감독하는 삼성준법위의 검토·승인을 반드시 거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기·삼성SDI·삼성SDS·삼성화재 등 올 2월 삼성준법위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7개 계열사가 이에 해당한다. 8일 있을 삼성준법위의 10월 회의에도 계열사 간 내부거래 안건이 올라와 있다. 

공정거래법 규제 강화되기 전
전자·물산·SDS 등 7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더 엄격히 점검

삼성준법위가 '50억원 이상'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전부 검토하는 데에는 정부 입법에 대한 사전 대응적 성격도 포함돼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가운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부거래·후원금 문제에 엄격한 삼성준법위 규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현행 공정거래법에선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상장회사 기준)인 계열사의 내부거래 매출 비중이 12% 이상일 경우,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감독 대상에 포함된다. 정부·여당은 총수 일가 지분을 20%까지 낮추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며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지적받았다.
 
삼성의 경우, 그룹의 물류·전산 업무를 담당하는 삼성SDS가 일감 몰아주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삼성·SK 등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SDS의 연 매출(약 10조7200억원)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은 84.8%다. 


현재 삼성SDS의 주요 주주로는 이재용 부회장(9.2%)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9%),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3.9%) 등이 있다. 삼성SDS의 내부거래 비중이 늘어나 기업 가치가 커지면 총수 일가의 지분 가치 또한 저절로 늘어나는 구조다. 일감 몰아주기로 적발될 경우, 회사가 과징금을 받는 것뿐 아니라 대주주까지 검찰 고발을 피하기 어렵다.
 

올 7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워크숍 모습. '세계 1위 기업, 준법이 생명이다'는 주제로 준법감시위 위원인 봉욱 전 대검차장이 강연했다. [사진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삼성준법위 관계자는 "법령 위반 문제에 앞서 리스크를 사전 점검하는 것이 준법위의 책무다. 설령 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삼성이 법을 지키는 조직으로 변하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삼성은 준법감시위와 이사회, 이중 구조를 갖춰 실정법 위반 가능성을 낮췄다. 일반 기업에선 이사회에서 내부 거래 안건을 승인한다. 
 

삼성준법위 운영에 이재용 집행유예 달려

4년 전 국정농단 사건을 겪은 이 부회장은 삼성준법위 위원들과 전화 핫라인을 설치하는 등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한다.

 
향후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도 삼성준법위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대법원이 지난달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재판부 기피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이 기존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에서 재개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사건의 재판장인 정준영(53·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올 1월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부장판사는 파기환송심 첫 공판 때도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