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대담집들을 섭렵하며 다시금 느꼈다. 정치인 문재인의 말엔 울림이 있었다. 이를테면 2017년 1월의 『대한민국이 묻는다』엔 이런 확언이 담겼다.
통합·너그러움·연민 말하더니
집권 후 소통의 양·질 크게 악화
그 또한 구중심처의 통치자 됐다
②“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목표 중 하나가 통합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 편 가르기를 한 거다. 자신을 비판하는 수많은 국민을 적처럼 만든 게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한다.”
③“대통령의 사고 자체가 자기중심적이라는 거다. 자신이 곧 국가이고, 자신의 가치가 바로 공익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탄핵심판 변호인이 한 말도 기가 막혔다. 다른 대통령도 다 했지 않느냐. 참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다.”
④“실제로 대통령이 몇 시간 동안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제대로 보고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었던 것, 그건 일종의 안보 공백이기도 하다. (중략) 대통령은 24시간 언제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⑤“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비인간의 모습에 질렸다. 그렇게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들이 또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
타당한 말이다. 대통령 문재인의 오늘과는 그러나 ‘산성’만큼이나 괴리가 있다. 편 갈라 싸우느라, 옳고 그름도 상식도 흐릿해졌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이었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차기 정부는 어떤 정부든 통합을 국정 목표로 내걸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이 상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나”라고 걱정할 정도다. 대통령의 24시간이 공공재라고 했지만 이제 와선 적어도 ‘새벽’은 빼자고 주장한다. 천안함 폭침에 대해선 회의(懷疑)했으면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월북’은 강하게 암시한다. 과연 대통령 문재인은 정치인 문재인의 아름다웠던 말들을 기억이나 할까.
물론 지킨다 싶은 발언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승복이 되면서 반성하게 만드는 정치적 공격은 없었다. 그냥 정치적 공격일 뿐이다.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건,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나 반대 의견이다. 예를 들면 ‘더 강단 있는 모습을 왜 보여주지 못하느냐. 문재인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도대체 무엇이냐. 분명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지적이다.” 지지율이 40%를 넘는다는데 스스로를 돌아보려나 할까. 대통령 취임사의 30가지 약속 중 한 가지(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만 지켜졌다던가.
두려운 건 이거다. 대통령 문재인의 소통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현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인색해졌다. 국민이나 국민의 대리인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 할 뿐이다. 불편하다 싶은 질문엔 묵묵부답이거나 대리인을 내세운다. 어느 정도인가 싶을 터인데, 지난 7월 국회 개원식 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10가지 질문을 던졌고 문 대통령이 직접 “정무수석을 통해서 답하겠다”고 약속했다는데 지금껏 안 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던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지체된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아들의 편지엔 곧바로 답변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아들이 물은 건 “아빠가 죽임을 당할 때 나라는 뭐 했나”였다. ‘나라’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대통령과 정부가 뭐 했나다. 문 대통령은 그저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해경의 조사 및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엉뚱한 답변이 답변일 수 있나. 대통령 문재인은 이제 구중심처의 통치자다.
고정애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