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 14주까지 여성의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조건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특정 임신 주수·조건을 어긴 낙태는 지금처럼 처벌받을 수 있다. 정부는 7일 이같은 내용 등을 골자로 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헌법재판소가 현행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18개월 만이다.
낙태죄 관련 개정안 7일 입법예고
또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24주까지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낙태를 허용한다. 지난해 헌재 일부 재판관은 “임신 22주 내외까지 처벌하면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는 2주 더 늘렸다. 현행 법률상 성폭력 등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낙태를 허용하는 최대 임신 주수가 24주다. 다만 정부는 입법예고안에 14주를 초과할 경우 보건소 등에서 의사·전문가와 상담을 받은 뒤 숙려(熟慮·곰곰이 생각하거나 궁리함) 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임신 중기 허용사유 담아
정부 관계자는 “입법안 내용에 관해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곤란하다”며 “다만 헌재의 결정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감 시한 2달여 앞두고 나온 개정안
이후 정부는 그간 현행 형법에서 아예 낙태죄 처벌 조항을 삭제할지, 아니면 특정 임신 주수를 넘긴 낙태행위를 처벌할지를 두고 검토해 왔다.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4일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 등 5개 부처 차관 회의를 열어 논의했다.
낙태죄 유지하며 나온 절충안
여성계, 종교계 강력 반발예상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입법안을 봐야 하겠지만) 헌재서 (낙태죄가) 위헌 결정이 났는데도 이번 안이 진일보한 게 아닌 것 같다”며 “여성계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하는, 인권적 차원에서 (개정안은) 퇴보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공동행동’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정 임신 주수 허용을 비판했다. 이 단체 나영 공동집행위원은 “지난 몇 년간 허용사유, 처벌 등을 검토해달라고 한 게 아니다”며 “실질적 변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준비했냐”고 따졌다.
한국천주교주교회는 “여성의 행복과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낙태 근절 운동을 벌이고 있는 프로라이프의사회는 낙태법 개정 방향 1원칙으로 태아 생명 보호를 꼽고 있다.
의료계, 상담·숙려제도 의문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상담을 비밀리에 해야 할 텐데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또 (미성년·불륜 등)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관련 절차를 밟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이 경우 허가되지 않은 위험한 약물을 사용하거나 더 음성화할 수도 있다”며 “생존 불가능한 태아는 24주 이후에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법안을 촘촘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김민욱 기자, 황수연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