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는 "월북" 野는 "시신훼손"…유리한 첩보만 내세우는 여야

중앙일보

입력 2020.09.29 14:24

수정 2020.09.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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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곶 앞에서 경비하는 해군 함정 [연합뉴스]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 피살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진위 공방이 군(軍) 첩보 공개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이) ‘연유(燃油)를 발라서 (시신을) 태우라고 했다’는 것을 국방부가 SI(감청 등에 의한 특별취급 정보)로 확인했다. 국방부가 그냥 판단한 게 아니라 정확하게 들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보안 사안인 SI 내용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앞서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28일) “월북은 사실로 확인돼가고 있다”고 했다. 근거로는 “(북한이) 월북 의사를 확인한 대화 정황들이 있다. 북한 함정과 실종자의 대화 내용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군이 감청한 내용을 일부 공개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닷새 전과 판이한 모습이다. 지난 24일 이번 사건 관련 첫 국방위 긴급현안보고가 열렸을 때만 해도 여야는 군 첩보와 관련해 상세 설명을 꺼렸다. 야당조차 “(월북) 이유에 대해선 우리가 브리핑하지 않기로 했다”(한기호 국민의힘 의원)며 말을 아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긴급현안보고를 위해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지난 25일 북한에서 통지문이 온 뒤 상황이 급변했다. 통지문 내용이 당초 정부 발표와 간극이 커 진위 논란이 본격화한 탓이다. 이후 여야가 각자 유리한 첩보를 선택적으로 공개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는 모양새다. 보안등급이 높은 기밀은 수집 방식은 물론 존재 자체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권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사건 중요도를 고려하면 한국 단독 감청정보의 일부 공개는 불가피하다”(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의 군사기밀 공개 논란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도 있었다. 신학용 당시 민주당 의원은 그해 10월 열린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사건 당일인 3월 26일 천안함과 평택 2함대 사령부 간에 오간 암호문을 공개했다. “(북한) 남포에서 연어급 잠수정 1척, 해주에서 예비모선 4척, 남포에서 예비모선 2척이 미식별 중”이란 전문이었다.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즉각 “암호문 내용을 이렇게 말하면 암호가 풀릴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암호를 풀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제지했다. 이에 야당이 “비밀 사항을 논의 못 하면 국방위에서 아무것도 할 게 없다”(박상천 민주당 의원)고 반발하는 등 언쟁이 벌어졌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