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의 귀농 과정은 흥미롭다. 화전민 터인 농장 주변은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초등 2학년인 1996년 서울에서 무술 도장을 하던 아버지(청화원 대표)를 따라 내려온 곳이다. 문경에서 초중고를 나온 뒤 다시 서울로 진학해 유치원 교사를 하다 돌아왔다. 부모엔 무연고지였지만 이씨엔 유턴이다. 농장에서 일하다 2017년 영농 후계자와 소담 대표가 됐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산나물과 주변 궁터 마을 주민들이 캐온 산채를 브랜드화했다. 산나물을 헐값에 넘기던 산골 소득에도 보탬이 됐다.
혁신 농업인이 고령 농촌의 새 주역
귀농 유치보다 실패의 안전망 긴요
도전 정신 인재가 농업 잠재력 깨워
대구 출신의 박홍희(48) 씨는 귀농 스마트파머다. 서울에서 굴지의 전자회사 부장으로 있다가 6년 전 딸기 스마트팜 둥지를 틀었다. 경북 상주시 청리면 평원 한가운데 우공(愚公)의 딸기정원(9000㎡ 규모)이다. 비닐하우스 8개 동은 웅장했다. 온실 환경 센싱과 통합 제어기 등을 갖춘 스마트팜이지만 외관은 다른 하우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박씨의 올해 매출은 2억7000만원. 코로나로 체험 방문객을 받지 않아 지난해보다 약 20% 줄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농업인이자 농업법인 굿파머스그룹(주)의 경영인, 스마트팜 교육자다. 법인에는 정규 직원이 4명이고, 늘 2~3명의 인턴을 둔다. 내년엔 상주 외서면에 딸기 스마트팜 유리온실(2만㎡)을 짓는다. 딸기 스마트팜으론 전국 최대 규모다. 설비비만 45억원이다.
그가 들려준 꿈은 세 가지다. 농사짓는 기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딸기 수출 확대다. 저온 과일인 딸기는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다. 판로가 홍콩·싱가포르·대만에서 태국·베트남으로 퍼지고 있다. 마지막은 농촌에서 지속해서 일하는 청년 배출이다. 농장을 넓히는 것도 자신 같은 우직한 독립 농부 양성을 위해서라고 했다. 우공이산(移山)의 실현, 그의 꿈은 당차다.
귀농의 재발견이라 할까. 혁신 농부가 고령 농촌의 활력소를 넘어 새 주역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00만7000 농가 경영주의 평균 나이는 68.2세다. 농가 인구 전체를 보면 일흔 이상이 셋 중 한 명(33.5%)이다. 외부 인구 유입은 불가결하다. 그렇지 않으면 농촌 지자체의 소멸은 시간문제다. 적극적 귀농(지난해 1만6181명), 귀촌(44만여명) 정책은 그 산물이다. 귀농으로 학교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귀농 인구는 2016년(2만599명) 이래 감소세다. 귀농 1번지를 둘러싼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지원·교육 체계가 난립 양상이다. 문제는 귀농 유치보다 실패의 안전망이다. 한번 망치면 끝인 곳에 창의력은 깃들지 않는다. 농촌도 도전 정신의 인재가 살린다.
농산어촌은 잠재력의 보고(寶庫)다. 먹거리와 볼거리, 쉼터가 어우러져 있다. 농작물 재배·가공·판매와 일체형의 체험·숙박 시설은 더 없는 관광 인프라다. 농박(農泊)은 새로운 트렌드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과소지가 적소(適疎)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농촌은 디아스포라를 끝낼 혁신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