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를 제재 대상에 포함하면서다. 통신 장비·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에 이어 또 한번 고강도 제재에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 중국의 통신ㆍ반도체 등 첨단산업 ‘숨통 끊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SMIC는 그냥 중국 회사가 아니다
중국 정부에게 SMIC는 단순한 반도체 위탁생산 회사가 아니다. 중국 정부가 직접 챙기는 ‘파운드리의 미래’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최근 ‘SMIC에 2조7000억원을 투자하고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반도체 굴기를 위해서는 파운드리 육성이 필요하고 SMIC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MIC의 올 3분기 시장점유율은 4.5%로, TSMC(53.9%)·삼성전자(17.4%)·글로벌 파운드리(7%)·UMC(7%)에 이어 세계 5위로 추정된다.
고강도 제재, 트럼프라서가 아니다
이런 고강도 제재는 트럼프 행정부라서 나온 걸까.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미국은 설계나 소프트웨어는 잘하지만, 반도체 양산 시설은 부족해 위기상황에서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이 리스크를 해소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자국 내 양산시설 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조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부터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7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 과학ㆍ기술대통령자문위원회는 ‘미국의 장기적 반도체리더십 확보를 위한 대통령 보고서’를 냈는데, 핵심 내용은 “중국 반도체산업의 부상을 철저히 막고 미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반사이익만 누리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내 파운드리 업계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이 SMIC를 견제하는 동시에 자국의 파운드리 산업 육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SMIC를 막은 게, 한국 업체를 도우려는 것이겠냐”면서 “결국엔 자국 업체를 키우거나, 외국 업체는 미국 내 시설 투자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 역시 “단기적 반사이익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 파운드리 경쟁이 더 녹록지 않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