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사과한 지 이틀 만에 남측의 영해 침범을 공개 경고하고 나섰다. 남측이 소연평도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공무원 수색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북측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남측의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NLL을 다시 문제 삼고 나선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北 이틀만에 사과 → '경고' 돌변, 고압적 자세
이와 함께 북한은 "서남해상과 서부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조직하고, 조류를 타고 들어올 수 있는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며 "이 같은 남측의 행동은 우리의 응당한 경각심을 유발하고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경·군 "우리 해역서 수색"…北 사실상 NLL 거부
이에 따라 북한은 자신들이 서해 영해의 기준으로 제시해 온 '서해 해상경비계선'을 기준으로 '무단 침범'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1999년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해상경비계선이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서해 경비계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분계선은 현재의 NLL에서 훨씬 남쪽으로 설정돼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NLL 쟁점화 움직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빌미를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 2018년 9·19 군사합의서 작성 당시 남북이 서해 NLL 지역 평화수역 설정에 대해 논의하면서도 경계선에 대한 명확한 정리 없이 ‘북방한계선’이라는 문구만 넣었다.
김덕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예비역 해군준장)은 당시 '남북 군사합의서’의 전략적 함의와 해결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서해상 '적대행위 중지 구역(일명 완충구역)'의 기준을 NLL로 정하지 않은 것이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북한 주장을 수용했다는 논란이 있다"며 사실상 NLL이 무력화된 것으로 봤다. 김 위원은 이어 "NLL을 중심으로 남북 똑같은 해역을 완충구역에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다만 국방부는 이에 대해 "9.19 군사합의 상에 언급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표현을 통해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경고로 北의 태세 전환…남북 공동조사 가능성 ↓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이미 북한은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이름이 들어간 사과 통지문을 전달한 만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여길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NLL 문제를 거론하는 경고가 나왔으니, 공동 조사는 물론 북한 측의 추가 설명을 듣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는 전례가 없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정부는 북한에 현장 방문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 따라서 정부 합동조사단은 금강산 현장과 유사한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서 50대 전후 여성과 마네킹을 이용해 탄도실험, 사물식별 시험 등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더욱이 현재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침투를 경계하며 국경을 사실상 봉쇄한 채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 조사단의 입경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김상진·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