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는 지역화폐 도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효과를 고려해야 함.” 보고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지사는 ‘얼빠진 연구소’라고 공격했지만 재정을 고민하라고 만든 국책연구소의 보고서답다. 지역화폐 발행은 지자체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선택이다. 소비자에게 부여하는 10%의 인센티브 중 8%포인트는 중앙정부의 몫이고, 나머지만 지자체가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각 지자체의 선택이 과연 국가 전체적으로 최적인지는 의문이다. 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이른바 ‘구성의 오류’를 피하자는 문제의식이다.
지역화폐 문제점 지적에 발끈
국책연구소를 적으로 몰아세워
권력 불합리와 더 크게 싸워라
이 지사는 자기 확신과 신념이 강한 정치인이다. 싸워야 할 상대가 생기면 전투적이 된다. 동원하는 언어도 거칠어진다. “민주공화국 공복의 의무를 저버리고 국리민복에 반하는 소수 기득권자를 위한 정치 행위.” “국민의 삶과 국가 미래를 훼손하는 배임 행위.” 조세연에 대해 올린 SNS 글이다. 단어들이 섬뜩하다. 김유찬 조세연 원장은 누가 봐도 친정부 인사다. 경실련 활동을 하던 대학교수 출신으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세제 관련 정책 공약을 입안했다. 조세연 원장 취임 순간에도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있어 야당의 반발을 살 정도였다. 취임 후 틈날 때마다 확대재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 원장이 있는 국책연구소가 적인가.
이 지사의 언어에는 자신에 대한 일종의 과대 의미화도 엿보인다. “부정 비리와 적폐에 대해 공적 분노가 없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닌 협잡꾼일 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슬 퍼런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제1선에서 싸워 온 사람.” “다수 약자 몫을 빼앗는 큰 사발보다 작은 종지가 되겠다.” 조금 민망할 듯도 한데, 정치인에게는 익숙한 화법인가 보다.
그런 그가 당내의 불합리한 행태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조국과 추미애의 특권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흙수저도 없는 무수저 출신의 서민 정치인이라면서. 성추문 사건으로 자리가 빈 서울과 부산 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자는 원칙론을 들고 나왔다가 말을 바꿨다. 정면 싸움을 피하는 것은 친문과 맞서다 피 흘렸던 트라우마 때문인가, 아니면 여론 1·2위를 다투는 대선 주자의 몸조심인가. 따지고 보면 그가 내세우는 서민 정책들, 사실 죄다 돈 쓰기다. 청년배당·지역화폐·기본소득·기본대출 등. 친서민 정책에 돈 드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이런 것 말고도 확인하고 싶은 이재명의 가치와 소신이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