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그 영화 이 장면] 오! 문희

중앙일보

입력 2020.09.2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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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영화평론가

어떤 영화를 봐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면, ‘오! 문희’의 이유는 나문희라는 배우의 얼굴이다. 이 배우는 환갑이 다 되어서야 영화계에 들어왔고(1998년 ‘조용한 가족’), 스크린 속에선 항상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였다. ‘오! 문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이 영화에서, 그는 두원(이희준)의 엄마이며 보미(이진주)의 할머니다. 치매 때문에 기억이 깜빡깜빡 하지만, 그는 손녀가 피해자인 뺑소니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다. 보험회사 직원인 아들과 문희는 범인을 잡으러 나선다.
 

영화 '오! 문희'

크고 작은 사건이 쉼 없이 일어나는 ‘오! 문희’를 소동극에서 가족영화로 견인하는 힘은 배우에서 나온다. 영화 내내 정신없이 동분서주하지만, 문희는 울고 웃고 화내는 와중에 마치 여백 같은 표정을 만들어낸다. 무표정에 가까운 그 얼굴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스펙터클이며, 생각해보면 나문희라는 배우는 언제나 영화 속에서 그런 거부할 수 없는 ‘안면의 풍경’들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관객들도 항상 나문희의 얼굴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고 연민의 감정에 젖어왔다. 그의 표정은 곧 내 어머니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추석이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뵙진 못하더라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얼굴들. 그 시간은 의외로 꽤나 울림 있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