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보험설계사

중앙일보

입력 2020.09.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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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금융기획팀장

‘보험외무원=남녀 10명 24~45세 고졸 초보자 3만원’.
 
1970년대 신문에 등장한 보험외무원, 즉 보험설계사 모집 공고다. 나란히 실린 서적 판매원(20~25세)보다는 대상 연령이 다양했고, 화장품 외판원(중졸 2만5000원)보다는 학력과 월급이 높았다.
 
과거 보험설계사는 화장품 방문판매원과 함께 대표적인 여성 일자리로 꼽혔다. 진입 문턱이 낮은 데다 자유롭게 일하고 능력껏 버는 실적수당제인 만큼 주부들에게 딱 맞았다. 주변을 샅샅이 훑어 ‘아는 사이니까’ 보험을 하나 들게 만드는 ‘아줌마식’ 연고판매 영업이 비교적 잘 먹혔다.
 
그때도 ‘이런 주먹구구식 영업으론 안 된다’는 인식은 있었다. 1992년 삼성생명이 대졸 여성 설계사 채용을 시작했다. ‘보험아줌마’가 아닌 ‘재무설계사’로의 변화를 표방했다. 명문대 출신이나 해외 유학파 설계사가 간간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1990년대 연 30만 명가량이던 신규 등록 보험설계사 수는 2000년대 들어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연 10%가 넘던 시장금리가 2000년대 들어 반토막 나면서 ‘역마진’ 우려가 커진 보험사들이 몸집을 줄이면서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보험회사는 설계사 대신 텔레마케터를 크게 늘렸다. 홈쇼핑과 인터넷을 통한 보험 판매가 시작됐다. 2003년엔 은행 창구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슈랑스’도 도입됐다.
 
이제 FC(파이낸셜컨설턴트)나 LP(라이프플래너)로 불리는 보험설계사의 입지는 디지털화로 좁아질 일만 남은 듯했다. 코로나19로 이른바 ‘언택트(비대면)’ 트렌드까지 거세어 지면서 더 그랬다. 그래서 의외였다. 올 상반기 생명보험·손해보험 업계 모두 수입보험료가 예상을 깨고 증가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보험영업에 타격이 클 거라고 전망한 게 빗나갔다”며 머쓱해 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대구·경북 지역 실적이 급감할 줄 알았더니, 되레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그들의 공통된 결론은 이거다. “보험설계사 분들 힘이 대단해요.” 감염병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인간이건만, 때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