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협상은 물론 남북대화조차 꽉 막힌 상황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문 대통령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대통령 임기도 1년 반 남짓 남은 상황에서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 그간 추구해 왔던 톱다운 방식의 한반도 문제 해결은 물 건너갈 게 뻔하다.
북한에 미군 철수 요구할 명분만 줘
안보 방패막이 유엔사도 흔들릴 우려
당장 북한이 공격하지 않는다고 김정은 정권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불과 석 달 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던 장면을 잊었는가. 게다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정전 67주년인 지난 7월 말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우리 국가의 안전과 미래는 영원히 담보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자위적 핵 억제력을 강조하며 핵보유를 정당화한 것이다. 이런 데도 종전선언을 발판으로 대화를 이어가면 북한이 순순히 핵을 포기할 거라고 믿는 건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문 대통령의 촉구는 미국과의 상의 없이 이뤄진 듯해 걱정을 더하게 한다. 종전선언 얘기가 나오자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뤄질 수도 없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터라 미국 정부의 동의 아래 종전선언이 이뤄지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어도 실질적인 비핵화의 첫걸음이라도 내딛지 않는 한 일방적인 종전선언 추진은 불가능하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코로나19 공동대응을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제안 역시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무리수는 대북 협상 재개를 “더는 늦출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조바심에서 나온 게 틀림없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 통일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지난한 일이다. 이제라도 임기 중에 큰 성과를 거두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비핵화와 통일의 초석을 쌓는다는 심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다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