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쿠팡이 최근 청와대 회의 석상에 올랐다. 택배기사가 파업을 선언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한 17일이었다. 정책 당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근로 시스템이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택배기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자율과 유연성은 시장경제의 역린
경쟁을 먹고 자라는 혁신의 원리
과도한 규제로 깨면 경제활로 잃어
이기권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사업이 확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흐름을 놓치면 경제도 노동시장도 활력을 가지기 힘들다. 그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업종이자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업종이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에서 일자리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쿠팡의 사례를 연구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실 쿠팡의 경영 실적만 보면 거의 한계기업으로 분류될 만하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는 상태가 3년간 지속하는 기업을 한계기업이라고 한다. 한데도 쿠팡은 근로 시스템을 비롯해 시장에서 본 적이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이 자라고 있다는 얘기다. 손 회장의 막대한 투자를 시장은 ‘혁신 기업’으로 분류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쿠팡에서 미래 기업의 길을 손 회장이 본 듯하다. 한계기업이 경쟁을 먹이로 혁신을 찾고, 활로를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국내 다른 한계기업에서 이런 모습을 목격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기업 100개 중 18개는 한계기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4%)보다 훨씬 높다. OECD 회원국 중 다섯 번째다.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을 타고 세계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서비스업은 더 열악하다. 한계기업 비중이 터키에 이어 두 번째(38.1%)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한계기업이 활로를 못 찾는 이유를 “규제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규제를 완화해 한계에 다다른 기업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쿠팡처럼 말이다.
규제는 운신의 폭을 좁힌다. 경직되게 마련이다. 유연하게 대처할 힘을 뺏는다. 이래서는 거대한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종국에는 기업 난민으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이게 노동 난민으로 이어지는 건 불문가지다.
그런데도 규제는 차고 넘친다. 국회와 정부 발이다. 전국 어디든 마트나 쇼핑몰을 못 만들게 하는 희한한 법이 발의되는가 하면, 희망퇴직도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노동 규제까지 우후죽순이다. 마트·쇼핑몰이 지역 경제를 얼마나 활성화하는지 안중에 없다. 기업의 인력운용 자율성까지 박탈하려 한다.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기본법은 9년 동안 국회에 묵혀 놓은 채다.
자율과 이에 바탕을 둔 유연함은 시장 역린(逆鱗)이다. 『한비자』의 ‘세난(設難)’편엔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어야 설득할 수 있다(說者能無嬰人主之逆鳞則幾矣)’는 문구도 새겨볼 만한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기업 거리두기를 하면 어떨까. 섣부른 경영개입이나 규제 대신 거리두기 이행으로 시장의 자생력을 키우고 위기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면 안 될까.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 정치나 정책이 시장을 이기려 드는 일이 잦아서 하는 말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