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0시 서울 중랑구 한 소아청소년과에는 진료 대기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전화가 울렸다. 이 병원 간호사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 접종 문의 전화에 이렇게 답했다. 병원 앞에는 “인플루엔자 국가지원사업 일시 중단 안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백신 유통 중 문제가 발견돼 불가피하게 인플루엔자 국가 예방접종 지원사업을 일시 중단한다”며 “재개일은 추후 재안내 할 예정이다”고 알렸다.
전화벨이 한 번 더 울렸다. 간호사는 “직접 병원을 방문했다가 허탕 친 환자는 없지만, 병원 문 열자마자 서너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은 21일 밤 11시 보도자료를 통해 “인플루엔자 조달 계약 업체의 유통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22일부터 시작되는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문제가 발견된 백신은 22일부터 무료 접종을 하려 했던 13∼18세 대상 물량이다. 질병관리청은 독감 백신을 운반할 때 냉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일부 업체가 이송 과정에서 백신을 상온에 노출해 문제가 생겼다며 품질 검증을 철저히 하기 위해 해당 물량뿐 아니라 임신부 등 전체 대상자 예방접종을 일시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소아청소년과도 한산했다. 접수를 받는 간호사는 “환절기면 감기 걸려서 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좀 줄었다”고 말했다.
독감 백신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부모들은 불안을 호소했다. 3살 아이가 있다는 이모(34) 씨는“회사 근처라서 점심 먹기 전에 소아청소년과에 잠깐 들렀다”며 “8일부터 접종 시작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본 뇌염 예방 접종도 맞춰야 한다고 해서 먼저 한 뒤 맞으려 했는데 중단 사태가 벌어져 걱정이다”고 말했다.
만 8세, 10세 두 아이의 엄마 이모씨는 22일 오전 동네 소아청소년과에 독감 예방접종을 예약했다가 1339로부터 중단 안내 문자를 받았다. 이씨는“추석 전에 서둘러 맞히려고 예약했는데 못 하게 됐다”며 “기사를 보니 문제가 된 건 13~18세용이었는데 13세 미만인 우리 아이까지 왜 중단된 것인지, 백신 전체에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이미 공급된 백신은 품질이 검증된 경우 순차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의 독감 백신의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항목에 대한 시험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독감 백신 접종 재개는 식약처의 안전성 여부 검사 후 가능할 전망이다.
이태윤·황수연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