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얼음골, 아늑한 한옥촌… ‘마늘의 고장’ 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2020.09.18 00:03

수정 2020.09.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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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대구경북 ⑩ 의성 1박 2일

경주가 아니다. 경북 의성군 조문국 사적지다. 금성산 일대에 삼한 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의 고분 374기가 모여 있다. 대형 고분과 고대 유물을 볼 수 있는 조문국 사적지는 가족끼리 안전하게 비대면 여행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의외의 발견. 경북 의성을 여행하다 보면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의성에는 정말 가볼 곳이 많다. 맑은 계곡, 무료 캠핑장, 북스테이 숙소, 희귀한 문화유산…. 선뜻 떠오르는 여행지는 없어도 가족이 가볼 만한 아기자기한 곳은 많다. 마침 이달 초 경북 구미에 사는 현준이네 가족이 첫 의성 여행을 했다. 이봉용(40)·김기양(38)씨 부부와 세 아이(현준·다현·수현)의 1박 2일 여행기를 소개한다.
  

[첫날 오전 11시] 빙계 계곡

빙계 계곡 어귀에 새로 조성된 오토 캠핑장.

가족이 가장 먼저 찾은 빙계 계곡 군립공원. 경북 8승(勝) 가운데 하나다. 빙계는 우리말로 ‘얼음골’이다. 계곡 한편에 풍혈(風穴)과 빙혈(氷穴)이 있다. 풍혈에서는 에어컨보다 찬바람이 나오고, 빙혈에는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맺힌다. 아이들은 바위틈에 얼굴을 대고 늦여름 더위를 식혔다. 신기하게도 겨울에는 풍혈과 빙혈에서 훈훈한 바람이 나온단다.

탁 트인 금성산 고분군 산책
갈릭 시스터즈처럼 컬링 체험
한복 빼입고 한옥마을 구경

 
계곡에는 무료 캠핑장도 있다. 누구나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그게 단점이었다. 예약 시스템이 없어 헛걸음하는 캠퍼가 있었다. 의성군이 계곡 어귀에 큼직한 캠핑장을 새로 조성한 이유다. 캐러밴 12대를 포함해 61개 사이트를 갖춘 유료 캠핑장이 올가을 문을 연다. 개장 앞둔 캠핑장 놀이터에서 삼 남매는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오후 2시] 금성산 고분군

금성면에 자리한 식당 ‘수정골맑은한우’에서 점심을 먹었다. 의성에서는 소도 마늘을 먹는다. 그래서 한우 맛이 남다르다고 주장한다. 금성면에 금성산(531m)이 있다. 7000만년 전 분출한 뒤 잠든 사화산(死火山)이다. 의성 사람은 금성산 화산재가 섞인 토질 덕에 의성 마늘 맛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금성산 주변은 무덤 밭이다. 1800년 전 조문국 시대 고분이 374개나 있다.

조문국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금성산 고분군(조문국 사적지)은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강소형 잠재 관광지’다. 인지도는 낮지만, 잠재력이 크다는 얘기다. 5월엔 작약꽃, 10월엔 국화·핑크뮬리가 장관을 이룬다. 이봉용씨 부부는 “사방으로 막힌 곳이 없어 가슴이 탁 트인다”고 입을 모았다. 사적지 5분 거리에 ‘조문국 박물관’이 있다. 놀이터와 발굴 체험장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다.


[오후 4시] 마지막 성냥공장

한국의 마지막 성냥공장인 성광성냥.

요즘 의성군은 재미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13년 문 닫은 한국의 마지막 성냥공장 ‘성광성냥’을 기억하는 프로젝트다. 한때 공장 직원이 300명에 달했으니, 의성에서는 대기업이나 다름없었다. 의성군은 공장 주변에 성냥을 주제로 벽화 골목을 조성했다. 읍내 주민 커뮤니티센터인 ‘문화복덕방’에서 성냥갑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의성컬링센터에서 컬링을 체험하는 가족의 모습.

의성읍에 의성컬링센터가 있다. 평창 올림픽의 영웅 ‘갈릭 시스터즈’가 실력을 갈고닦은 컬링 성지다. 아빠와 세 남매가 방한복을 입고 영상 10도인 컬링장 안으로 들어갔다. 20㎏에 육박하는 스톤을 하우스에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컬링장에서 연습 중인 선수들의 모습을 넋 놓고 구경했다. 1레인 2시간 체험 8만원.
  

[오후 8시] 사촌마을 고택

군청 앞 돈가스 전문점 ‘윤카츠’로 향했다. ‘의성 슈퍼푸드 마늘축제’에서 두 번 상을 받은 식당답게 음식 맛이 준수했다. 세 남매는 치즈롤카츠와 윤카츠우동을 맛나게 먹었다.

 
의성에서는 반드시 고택에서 묵어야 한다. 유서 깊은 한옥마을이 곳곳에 자리한다. 영천 이씨 집성촌인 산운마을, 안동 김씨 집성촌인 사촌마을이 유명하다. 현준이네 가족은 사촌마을 ‘민산정’에 묵었다. 고택 체험이 처음인 아이들은 하늘 수놓은 별과 반짝이는 반딧불이가 신기한지 깊은 밤이 돼서야 잠이 들었다.

사촌마을 민산정에서는 꽃차 체험을 할 수 있다.

  

[둘째날 오전 9시] 꽃차 체험

이튿날, 마을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뒤 민산정에서 꽃차 체험을 했다. 맨드라미·마리골드·목련꽃을 덖은 뒤 뜨거운 물에 우린 차를 마셨다. 꽃차 소믈리에 김정희씨는 “꽃차는 눈과 기관지에 좋을 뿐 아니라 체험 과정에서 심신이 안정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촌마을에는 올해 문을 연 작은 도서관 ‘의성서당’이 있다. 장서가 3000권에 달하고 사서도 있다. 마을 주민에게 책을 무료로 빌려주고, 하룻밤 묵으며 책을 원 없이 보는 ‘북스테이’도 운영한다. 의성서당 앞 ‘자계정’에서 한복(2시간 5000원)을 빌려 입고 마을을 산책했다.

한옥에서 북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사촌마을 의성서당.

  

[오전 11시] 고운사 답사

사촌마을에서 10㎞ 거리에 천년고찰 고운사가 있다. 고운사 가는 길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길답게 곱고 아늑했다. 가족은 고운 최치원이 설계한 ‘가운루’와 8월 31일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 등을 구경했다. 아이들이 지루해할 때쯤 호랑이 그림을 보러 갔다. 살아 있는 듯 눈빛이 생생한 호랑이를 보며 아이들이 놀라워했다.

 

의성의 명물 마늘치킨.

고운사가 있는 단촌면에 소문난 치킨집이 많다. ‘핫치킨’의 마늘치킨을 먹어봤다. 의성 마늘과 청양고추가 버무려진 양념이 제법 매웠는데 씹을수록 의성 마늘 특유의 단맛이 도드라졌다. 엄마 김기양씨는 “몰랐던 여행지도 좋았지만, 한우와 치킨 맛이 생각나 의성을 또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