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 “토이 들으며 프로듀서 꿈꿨는데 안테나서 꿈 이뤄”

중앙일보

입력 2020.09.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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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프로듀서 ‘더 블랭크 숍’으로 첫 정규 앨범을 낸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 [사진 안테나]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옷을 만들자.”  
프로듀서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이라는 이름으로 출사표를 던진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35)의 포부다. 17일 첫 정규 앨범 ‘테일러(Tailor)’를 발표한 그는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토이의 앨범을 들으며 자란 ‘토이 키드’”라며 “작곡가, 연주자의 개성과 스펙트럼으로 만들 수 있는 곡들에 매력을 느꼈다. 프로듀서로서 앨범을 발매하는 것은 오랜 꿈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인천 재능대에서 재즈 피아노를 전공하고 2005년 울산 재즈 페스티벌 콩쿠르 대상, 2008년 자라섬 국제 콩쿠르 3위에 오르는 등 연주자로서 재능을 꽃피워온 그의 꿈이 실현된 것 역시 토이 덕분이다. 지난해 토이의 유희열이 수장으로 있는 안테나에 몸담게 되면서 새로운 음악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스무살 때부터 이태원의 올댓재즈와 홍대 에반스 같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해온 그는 2009년 ‘윤석철 트리오’를 결성하고 6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등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를 쌓아왔다. 

재즈 피아니스트서 프로듀서로 도전장
백예린 등 참여한 첫 앨범 ‘테일러’ 발표
“보컬 정하고 곡 만들면서 밸런스 찾아
다른 장르 뮤지션과 소통하며 쾌감 느껴”

“진로 고민 많을 때 유희열 만나 도움”

2009년 윤석철 트리오를 결성한 그는 지난해 안테나와 계약하면서 새 도전에 나섰다. [사진 안테나]

중학교 2학년 때 록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음악학원에 등록했다가 재즈 피아노를 배우게 된 그는 “재즈 말고도 하고 싶은 음악이 많았다. 듣는 분들도 헷갈리지 않게 서로 구분 지어서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유희열 대표님을 뵌 적이 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상하고 있는 앨범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여기서 하면 되겠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대중음악과 접점은 꾸준히 넓혀 왔다. 그가 작곡자로 참여한 자이언티와 크러쉬의 ‘그냥’(2015)이 음원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고, 윤석철 트리오와 장혜진이 함께 만든 스페셜 앨범 ‘소품집’(2016)을 선보이기도 했다. 정재형ㆍ루시드폴ㆍ페퍼톤스ㆍ박새별 등 기존 소속 싱어송라이터 외에는 유희열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SBS ‘K팝 스타’ 출신 샘 김ㆍ권진아(시즌 3), 정승환ㆍ이진아(시즌 4), 이수정(시즌 5) 등에 집중했던 안테나가 11년 만에 영입한 새 아티스트라는 사실도 화제를 모았다.
 

‘테일러’ 트랙리스트. 데이식스 원필, 백예린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사진 안테나]

이번 ‘테일러’ 앨범에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 면면도 화려하다. 데이식스 원필이 부른 ‘사랑노래’와 백예린이 부른 ‘위 아 올 뮤즈(We are all Muse)’ 등 더블 타이틀곡을 비롯해 10CMㆍ선우정아ㆍ안녕하신가영, 기타리스트 하헌진, 밴드 까데호 등 다양한 피처링진이 참여한 총 14곡이 수록됐다. 빈 공간을 다채롭게 채워넣는 ‘음악의 재단사’로 나선 윤석철은 “거의 모든 곡을 처음부터 보컬을 정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팬으로서 바라보는 가수의 이미지와 음악 스타일, 나의 색깔을 고민하다 보니 밸런스가 맞는 지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진아 가이드 녹음 듣고 만세 불러”

“재즈가 아닌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접할 때는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연주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처음에는 뭔가 겉핥기식으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요. 다른 장르 뮤지션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새로운 음악도 듣고 특유의 문화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할 때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8비트 게임 속에서 이진아 목소리가 나오면 너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랜선탈출’ 가이드 녹음을 듣고 만세를 불렀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거든요.”
 

‘테일러’ 콘셉트 필름. 주차장, 공원, 빌딩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 안테나]

프로듀서가 주축이 된 앨범은 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하다. 힙합 레이블 AMOG의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나 미국 EDM 듀오 체인스모커스 등 장르에 구분 없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다. 윤석철은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으로서 더 다양한 시도와 방법의 음악들이 생겨나고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재즈는 시대에 따라 같이 발전하고 변화한 음악이에요. 지금은 모든 장르가 존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고 잘 소화하고 싶습니다.”
 
재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미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허비 행콕을 롤모델로 꼽았다. “허비 행콕은 뛰어난 연주력과 감각으로 재즈뿐 아니라 많은 장르에 도전했고, 그 성과를 앨범으로 보여줬어요. 그의 행보에 저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부족하지만 그의 발끝만이라도 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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