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양성희의 시시각각] K웹툰 시대, 그리고 네이버

중앙일보

입력 2020.09.1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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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

출근길 지하철 젊은이들을 둘러본다. 죄다 휴대전화에 코 박고 있다. 웹툰도 많이 본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화면, 독창적 이야기, ‘스낵 컬처’의 대표주자가 ‘K웹툰’이다. 보통 요일별로 한 회씩 공개하기 때문에 일과처럼 챙겨보는 이가 많다. 국내 최고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은 지난달 하루 거래액 30억원 기록을 세웠다. 연간 1조원 시대가 코앞이다. ‘배고픈 만화가’도 옛말. 네이버 웹툰 전체 작가의 연평균 수익은 3억원을 넘는다.
 
우리 웹툰은 해외에서도 선전 중이다. 전통의 만화 강국 일본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웹툰이 ‘망가’를 제치고 시장 1, 2위를 다투고 있다. 미국의 청원 사이트(change.org)에는 카카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달라는 북미 팬들의 청원이 올라왔다. 넷플릭스가 우리 웹툰을 속속 영상화하듯 원천 콘텐트로도 각광받는다.

잇단 여혐 논란 네이버 인기 웹툰
커가는 K웹툰, 플랫폼 역할 막중
창작 자유만큼 자율규제 최선을

최근 네이버 인기 웹툰 2편이 ‘여혐’ 논란에 휘말렸다. 이례적으로 남성 팬들이 공개 비판하고 나선 ‘헬퍼’ 시즌 2, 여성·장애인 비하 논란이 잇따른 ‘복학왕’이 그것이다. 수작으로 평가받은 시즌 1과 달리 ‘헬퍼’ 시즌 2에는 모든 여성이 성매매 여성 아니면 성폭력 피해자로 등장하고, 개연성 없는 강간 장면이 난무했다. 미성년자·노인을 포함한 패륜적 묘사가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수준이다.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헬퍼’ 팬카페 남성 회원들이 참다못해 “19금이라지만 이런 성차별적 웹툰이 네이버라는 초대형 플랫폼에 버젓이 연재되는 것은 남자가 봐도 문제”라고 비판 성명을 냈다. SNS에서는 ‘웹툰 내 여성혐오를 멈춰 달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안 보면 그만’ 수준을 넘어 만화 팬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건 처음이다. 한 남성 팬은 “남자들도 죄다 강간범, 깡패, 변태, 몰카범이다. 이건 여혐이자 남혐”이라는 글을 올렸다. 네이버는 “작가에게 수정 의견을 전달하고 있으며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스타 작가 기안84의 ‘복학왕’은 비정규직 여성이 직장 상사와 성관계 후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에피소드로 논란이 됐다. 여성을 ‘성을 이용해 쉽게 살아가는 존재’로 비아냥거리는 시선이 문제였다. 작가의 사과와 장면 수정에도 비판이 가라앉지 않았다. 소수자 비하 전력이 있는 데다, 여러 논란에도 작가의 위치가 굳건한 게 반감을 키웠다. 작가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인기 셀럽이 됐고, 사회적 논란이 일 때마다 방송이 나서서 그를 해명·옹호해 줬다. 여혐의 강도는 ‘헬퍼’에 비할 수준이 아니고, 그로선 억울하겠지만, 대중이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다.
 
방통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방송 프로그램과 달리 웹툰 내용은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의 자율규제가 전부다. 디지털 콘텐트의 특징이자, 과거 만화가들이 정부 검열에 맞서 끌어낸 성과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란 가치와 별개로, 날로 커지는 웹툰의 영향력에 비해 마땅한 견제 수단이 없다는 건 문제다. 무엇보다 막강한 수익을 올리는 네이버가 ‘자율규제’ ‘작가 존중’이라며 작품 검수 책임, 독자 불만 수렴 등 당연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 관계자는 “논란이 생기면 작가에게 사과문을 쓰게 하고 끝이다. 매번 개선하겠다, 서비스 담당자를 교육하겠다지만 말뿐”이라고 꼬집었다.


‘복학왕’에 대해 연재 중단 요구가 나오자 웹툰작가협회 등은 “파시즘”이라며 맹비난했다. 창작물의 퇴출을 주장하는 집단적 문제 제기 방식도 문제지만, ‘혐오 표현’이란 새로운 화두에 ‘파시즘’의 낙인을 찍어 원천봉쇄하는 것 또한 문제다. 그보다는 달라진 성인지 감수성과 독자의 요구를 웹툰의 자율성 안에서 어떻게 녹여야 하는지, 또 자율규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 아닌가. 예외적 사례라 해도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진저리쳐진다”며 남성 팬들이 들고일어나는 상황이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