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9월 다른 날 저녁. 한 회사 직원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식하기 위해서다. 장소는? 각자의 집이다. 컴퓨터 앞에는 음료와 안주가 놓여있다. 재택 근무하는 이들은 업무가 끝난 뒤 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른바 ‘랜선(온라인) 회식’이다.
한국은 식당 등 대면 중심 많아
비대면 강요하는 코로나 직격탄
실업 완충역할 자영업 보호해야
하지만 코로나19가 사람이 만나는 곳을 한 단계 건너뛰게 했다. 바로 PC방, 노래연습장, 맥줏집, 카페, 식당이다. 한국에서 이곳은 대부분이 자영업자의 영역이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대면의 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형태의 ‘비대면’을 강요한다. 코로나19의 세력이 커질수록 대면의 공간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은 위축되거나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한국 자영업자의 무덤이 돼 가고 있다. 자영업자는 ‘타격’ 정도가 아니라 ‘초토화’됐다고 절규한다. 속은 이미 타들어가다 못해 숯덩이가 됐다고 말한다. 타격은 상황이 어느 정도 호전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초토화는 다르다. 상당수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외국 관광객으로 가득 찼던 서울 명동은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휴·폐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주변으로 갈수록 사정은 더 심각하다. PC방, 노래연습장뿐만 아니라 휴게음식업은 매출이 80% 이상 줄어 사실상 업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올해 7월 자영업자는 554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만7000명 줄었다. 감소 폭이 1년 전의 5배에 달한다.
한국의 자영업은 고용에 있어서 홍수 때 물을 머금은 숲 역할을 했다. 국내 숲이 머금고 있는 물의 양은 소양강댐의 10배에 달한다. 경기 침체 등으로 실업자가 쏟아지면 이들은 자영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거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자영업 자체가 무너지며 고용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자영업이라는 숲이 사라지니 실업대란이라는 대홍수를 맞닥뜨리게 됐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취업자 4명 중 1명꼴로 선진국보다 과도하게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비중(2018년 기준)은 25.1%에 달한다. 이 비중은 미국의 약 4배에 달하고, 독일과 일본의 약 2.4~2.5배 정도다.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만 자영업자 비중이 줄어도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문제는 코로나19의 여파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지속할 것이라는 데 있다. 주요 세계 석학은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비대면, 자동화 확산 등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자영업은 어떤 형태로든 위축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는 대면 중심의 자영업을 비대면 부문으로 영역을 대폭 확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과도기에서 나오는 실업자의 보호, 업종 전환을 위한 교육 등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도 마련돼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책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자영업은 한두 번 잘못되면 극빈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며 “시장주의 원조라는 영국에서조차 자영업자도 임금생활자처럼 80%까지 정부에서 소득을 보전해주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영업이라는 숲을 잘 살려야 실업대란이라는 홍수를 막을 수 있다. 한국이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의 무덤이 되지 않으려면….
김창규 경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