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도움을 받은 후 얼마 있지 않아 바로 보답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당장 보답할 것이 없어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도움에 대해 답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그 시간 차가 너무 커서 도움을 준 사람에게 직접 갚지 못하고 그 후손들에게 은혜를 갚는 경우도 생긴다. 그 예가 바로 페루 출신의 내 지인 미겔의 가족사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이야기 중 도움과 관련된 가장 놀라운 이야기인지라 지면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들었다.
남을 돕는 공덕의 씨앗을 뿌리면
그 열매가 바로 돌아오기도 하고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미겔 할머니에게는 나이가 어린 아이였을 때 죽은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죽은 아들 이름 앞으로도 이민 허가증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경우 그 허가증을 몰래 돈을 받고 파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겔의 할머니는 돈을 받지 않고 이웃집에 사는 아들뻘 되는 아이에게 그 기회를 주었다고 했다. 혼란한 중국을 떠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그 아이는 서류상으로는 미겔 할머니의 아들이 되어서 남미 페루 땅을 밟게 된 것이다. 페루에 도착해서도 그 아이는 미겔 할머니 가족과 가까이 지내면서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작은 반전이 있다. 바로 미겔 할머니의 서류상 아들인 그가 페루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더 많은 경제적 기회가 있는 미국으로 다시 한번 이민을 가게 된 것이다. 그는 70년대 미국 뉴욕에 정착해 페루에서 배웠던 장사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꽤 크게 성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페루에 남아 있는 미겔 할머니 가족들을 미국으로 초청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셨기 때문에 오실 수 없었지만, 페루에서 함께 성장한 친형제 같은 미겔 할머니의 아들·딸들은 가족 이민 초청을 통해 미국으로 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중국에서 받았던 미겔 할머니로부터의 도움에 대한 보답을 반세기가 지나 할머니 후손들에게 하게 된 셈이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페루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겔도 미국 대학에서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도 구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다 뉴욕에 사는 “삼촌” 덕분이라고 했다. 아마 미겔 할머니는 그 옛날 중국 광둥에서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아이처럼 거두며 베푼 도움이 자신의 손자에게까지 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주역의 문언전에는 적덕여경(積德餘慶)이라 하여 ‘덕을 쌓으면 넘치는 경사가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일을 했던 그 당사자만 그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경사 나는 일이 차고 넘쳐서 그 후손들에게도 전해진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도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공덕을 잘 쌓으면 그 공덕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결국에는 나에게로 다시 돌아온다고 가르친다.
예전에 나와 어르신 급식 봉사활동을 같이했던 분들에게 어째서 이렇게 빠지지도 않고 봉사 활동을 하실 수 있는지 여쭌 적이 있다. 한 분이 말씀하시길, 타인을 돕고 나면 몸은 좀 힘들지만 자신 마음 안에 날카롭게 서 있던 독기가 빠져나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셨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공덕의 씨앗을 뿌리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에게 이로운 열매가 돌아온다. 정화된 편안한 마음으로 바로 돌아오든, 아니면 반세기가 지난 후에 돌아오든 말이다.
혜민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