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 다른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이 공통으로 다룬 주제는 자동차에 부착하는 ‘필름번호판’이었다. ‘반사번호판’으로도 부른다. 페인트로 칠한 일반 번호판과 달리 빛을 반사하는 필름을 붙여서 만든다. 필름에 다양한 문양을 넣을 수 있는 장점도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쓰인다.
유튜버 “필름번호판, 단속 안 걸려”
도로에서 실험한 제보영상도 소개
국토부 “불법실험 정황 확인됐다”
경찰 “문제없이 다 잘 찍힌다” 확인
유튜버들은 필름번호판의 반사 성능을 문제 삼았다. 야간에 빛을 정상적으로 반사하면 경찰의 무인과속단속카메라에 찍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보자가 줬다는 실험 영상도 소개했다. “7월 초 모 방송국 취재팀이 실험한 영상”이라는 설명이 담겼다. 제한속도가 시속 30㎞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오후 9시경 페인트번호판과 필름번호판을 바꿔가며 단속카메라에 찍히는지 확인했다는 영상이다. 단속카메라에 노트북을 연결해 촬영 여부를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결과는 속도위반인데도 필름번호판은 안 찍혔다는 것이다.
앞서 비슷한 주장을 담은 블로그 글도 포털에 여럿 올라왔다. 이런 주장처럼 오랜 진통 끝에 도입된 필름번호판이 수준 이하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야간에 필름번호판을 단 차량은 과속하거나 신호를 어겨도 단속되지 않는다면 무법천지가 될 게 뻔하다. 더욱이 정부가 그런 사실을 알고도 숨겼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그래도 수사 의뢰는 좀 과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유튜브 영상과 멘트에서 불법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게 국토부 답변이다. 우선 단속카메라에 접속해 촬영 여부를 확인하는 건 경찰과 도로교통공단의 권한이다. 이들의 허가 없이 단속카메라에 접속하는 건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도로교통공단 공인검사처의 오상훈 과장은 “유튜브에 나온 영상 속 실험이 이뤄졌다는 날짜에는 카메라 관련 실험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게다가 유튜브 속 설명과 달리 방송사가 도로교통공단과 공동으로 실험을 한 건 7월 하순으로 날짜도 다르다. 누군가 불법으로 단속카메라에 접속해 실험을 진행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다.
허가 없이 번호판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건 자동차관리법 위반이다. 윤 국장은 “유튜버에게 제보한 측에서 불법으로 실험하고, 영상도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며 “제보자를 밝히고, 영상의 진위도 확인해달라는 게 수사 의뢰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직접 단속을 담당하는 경찰은 어떤 반응일까. 김용태 경찰청 첨단교통계장은 “100% 문제없이 단속 잘 되고 있다”며 “방송사들에서 유사한 제보를 받고 왔길래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차량으로 함께 실험했는데 문제없이 다 찍혔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해당 유튜브에는 “나도 과속했는데 단속이 안 됐다”는 댓글이 여럿 달렸기 때문이다. 김 계장은 “세부사항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단속 카메라의 기계적 허용오차가 있는 데다 급가속과 급감속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서 제한속도에 일부 허용오차를 두고 단속 중”이라며 “전국이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현행 규정상 단속카메라는 80% 이상 인식 가능하면 합격이다. 10대 중 2대는 인식 못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제한속도가 100㎞인 도로에서 이를 살짝 넘었다고 단속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오차 범위를 넘지 않으면 단속되지 않는다.
여러 관련 기관을 확인한 결과, 현재로선 필름번호판 성능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만큼 번호판 성능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과 개량 작업은 필요하다. 또 향후 업계 내에 상호 비방보다는 번호판 성능을 놓고 정정당당하고 치열한 경쟁이 자리 잡길 기대한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