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3세 프로포폴' 황당 구형했던 檢…법원은 절반 깎아줬다

중앙일보

입력 2020.09.10 15:4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강남의 한 성형외과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뉴스1]

검찰의 황당한 구형 이유로 논란이 됐던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가 10일 검찰 구형량의 절반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정종건 재판장)는 프로포폴을 2년 이상 상습투약하고 허위진료기록부를 작성한 혐의로 기소된 채 전 대표에게 징역 8월에 추징금 4532만원을 선고했다. 지난달 검찰 구형량(1년 6월)의 딱 절반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백하고 수사에 협조했다"면서도 "(과거 동종 범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도 2년 이상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한 것은 불리한 정상"이라며 실형을 선고했다.
 

檢, 지난달 황당 구형이유로 도마  

채 전 대표 재판은 검찰이 지난달 채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6월을 구형하며 밝힌 이유로 논란이 됐다. 당시 공판 검사는 "채 전 대표가 같은 전과가 있음에도 재범했고, 범행 기간과 횟수가 상당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실형 필요성을 밝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검사는 이후 채 전 대표가 "자백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해 해당 성형외과 원장 구속에 기여했다"며 재판부에 감형 필요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검사 구형이유 中
공판 검사=특히 프로포폴이 더이상 유흥업소 여직원이 피부미용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재벌 남성도 중독될 수 있다는, 오남용 위험을 알린 점을 (양형에) 고려해달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검찰의 말에 따르면 프로포폴을 주로 유흥업소 여직원들이 쓰는 마약이고, 채 전 대표가 상습 투약을 통해 재벌 남성도 중독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렸으니 양형에 반영해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검찰의 구형 이유가 언론 보도로 알려진 뒤 시민들은 "검사가 변호인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직 검사들 사이에서도 "부적절한 구형 이유"란 지적이 잇따랐다. 
 

檢 내부에서도 "오해살 만 했다"

당시 검찰은 "피고인의 수사 협조로 과거보다 광범위한 (프로포폴) 오남용 사례를 규명할 수 있었고 이에 기여한 협조를 참작했다는 취지"라며 "남녀를 구분하거나 성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현직 고위 검사는 "검찰은 재벌 등 권력자에겐 더 엄격해야 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샀다"고 했다.
 
검사 출신의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도 "프로포폴은 유흥업소 여성만 쓰는 마약이 아닐뿐더러 채 전 대표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프로포폴을 상습투약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감형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약 사건 변호를 맡았던 주영글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도 "이런 구형이유는 처음 본다"고 했다.
 

법원은 채승석 전 대표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채승석, 항소할 듯  

이날 법정에 나온 채 전 대표는 선고 전부터 긴장한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가 "하실 말씀이 있냐"고 묻자 대답하지 않았고, "구속으로 생계를 위협받을 가족이 있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채 전 대표는 결심에서 "후회하고 반성한다. 지속적인 병원 치료와 운동으로 반드시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채 전 대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3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인의 인적사항을 건네 거짓 진료기록부를 작성한 혐의도 받는다. 채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애경그룹에서 물러났다. 채 전 대표는 1심 선고에 항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