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로 요직 꿰찼다가 조국 수사로 좌천 '기막힌 모순'

중앙일보

입력 2020.09.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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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수사를 벌였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됐다. ‘우리 윤 총장’으로 불렸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단은 전멸했고, 검찰 조직은 ‘개혁 대상’으로 전락했다. 반면 조 전 장관이나 김경수 경남지사 등 친 정권 인사를 변호했던 이들은 잇따라 요직에 기용됐다.  
 

조국 수사 檢, 어디로  

권력을 겨눈 검사들은 모조리 중앙 무대에서 멀어졌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사법연수원 27기) 당시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긴 게 시작이었다. 한 검사장은 5개월만인 6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끌어내며 이른바 ‘적폐수사’의 선봉에 섰던 이력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한동훈 검사장[뉴스1]

“조 전 장관이 왜 무혐의인지 설명해봐라”, “당신이 검사냐”고 장례식장에서 직속상관에게 항명했던 양석조(29기) 당시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도 비(非)수사 부서인 대전고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양 검사 역시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수사등을 담당했다. 일선에서 조 전 장관 수사를 지휘했던 송경호(29기) 당시 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발령난 뒤 유임됐다.

 
지난 8월 조 전 장관에 대한 대대적 강제수사를 기점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기류 역시 확 바뀌었다고 한다. 임명 때만 해도 문 대통령은 그를 ‘우리 윤 총장’이라고 일컬으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주문했다. 고검 검사급인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기 위해 당시 고검장이 가던 자리를 검사장급으로 격하하고, 전임 총장에 비해 5기수 후배인 윤 총장을 검찰총장으로 파격 발탁했던 만큼 애정 어린 당부를 한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당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윤 총장 [중앙포토]

윤 총장 임명 당시 조국 당시 민정수석(오른쪽)과 윤 총장. 연합뉴스

그러나 조 전 장관 수사를 기점으로 ‘검찰개혁’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검찰 조직의 규모와 기능은 대폭 축소됐다. 수십 년간 검찰 직접수사의 양대 축이었던 특수부와 공안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법무부가 내놓은 직제개편안 역시 수사정보정책관·반부패수사부 등 대검의 힘을 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親정권 변호인들, 요직으로

반면 조 전 장관 등을 변호했던 이들은 줄줄이 요직에 발탁됐다. 조 전 장관의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이자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을 변호했던 김진수 법무법인 예강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20기)는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그의 직위는 행정부 장관급으로 법률구조공단은 사회 취약계층에 무료 법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지난해에는 이른바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변호를 맡아 보석 결정을 이끌어냈던 홍기태(17기) 변호사가 차관급인 사법정책연구원장에 발탁됐다. 그는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 [중앙포토]

공수처장 후보로는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이광범(13기) 전 법무법인 LKB 대표 변호사도 꾸준히 언급된다. 여권의 구원투수로 불리는 LKB파트너스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1·2·3심 재판을 맡아 벼랑 끝에 몰린 그를 최근 ‘통무죄’로 구해냈다. 김 지사의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과 조 전 장관 부부 사건도 맡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됐던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박판규(37기) 변호사도 지난해 8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발탁됐다. 
 
일각에서는 ‘여권의 나눠먹기 식 보은 인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 인사를 놓고 “적절한 ‘코드인사’는 정치의 숙명이지만, 원칙을 무너뜨린 인사는 언젠가 부메랑이 돌아온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떠들썩한데 비해 성과가 적었다”면서도 “국정농단 등 적폐 수사 경험으로 요직만 꿰차던 ‘특수통’ 검사들이 (조 전 장관) 수사를 기점으로 좌천되는 것 역시 모순적”이라고 평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