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금귀걸이…호화 무덤 주인은 키 170㎝ ‘신라 여인’

중앙일보

입력 2020.09.0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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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사진은 금동관과 금귀걸이, 금드리개, 구슬로 엮은 가슴걸이 등 유물 모습. [사진 문화재청]

키 170㎝ 정도의 그는 생전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이었을 게다.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차림까지 호화로웠다. 머리엔 금동관을 쓰고 양 귀엔 금귀걸이를 했다. 구슬을 엮어 만든 가슴걸이 아래로 은 허리띠, 은팔찌, 은반지까지 갖췄다. 양발엔 금동 신발을 신었다. 세월 속에 시신은 삭아 없어졌지만 황천길에 함께한 장신구들은 그대로 남아 1500여 년 만에 빛을 보았다.
 
지난 5월 신라 적석목곽묘 사상 13번째로 금동 신발이 나왔던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고 3일 문화재청이 밝혔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적석목곽묘)에서 관과 귀걸이, 반지, 신발 등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 황남대총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발굴
1500년 전 최고위층 장신구 출토

2018년부터 발굴조사를 벌여온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이날 유튜브 설명회에서 “지난 5월 이후 정밀 조사 결과 피장자의 양 귀 위치에서 (여성용) 굵은고리 귀걸이가 출토됐다”면서 “앞서 나왔던 청동 다리미, 방추차(가락바퀴) 등을 볼 때 피장자가 여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신구를 전공한 이한상 대전대 교수도 “남성의 고분에서 빠짐없이 출토된 큰 칼(대도)이 없는 반면, 허리춤에서 작은 장식칼 흔적들이 확인돼 무덤 주인공이 여성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출토된 장신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 형상대로 노출됐다. 피장자가 이들을 착장한 채 묻혔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5월 금동 달개(瓔珞·장식의 일종) 일부가 먼저 노출됐던 머리 부분에선 금동관이 확인됐다. 최고위급 신분임을 시사한다. 금동관은 화려하다. 관테에는 역 하트 모양 장식용 구멍들이 뚫렸고,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으로 뚫린 투조판이 있다.
 
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선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가 출토됐다. 오른팔 표면에선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나와 구슬 팔찌도 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은반지가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 1점이 나왔다. 왼손 부분을 추가 조사하면 은반지가 더 출토될 수도 있다.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출토됐던 금동 신발은 피장자가 신은 상태였던 걸로 추정된다. 이전까지 발굴 사례에서 금동 신발이 모두 피장자 옆에 놓여 있던 것과 다르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 신발 뒤꿈치까지의 길이는 약 176㎝. 피장자의 키를 170㎝ 내외로 추정하는 이유다.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의 이현태 연구사는 “인골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 한 확언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고고학적 판단으로는 장신의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신라인의 평균 키를 알 순 없어도 이례적인 케이스로 추측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굴은 2018년부터 이어지는 경주 황남동 120호분 조사 사업의 일환이다. 문화재청은 “과학적 분석으로 인골 흔적을 탐색하고, 신분·성별 등 피장자의 정보를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