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오병상의 코멘터리] 조국을 머리 속에서 지우면서…

중앙일보

입력 2020.09.03 21:29

수정 2020.09.0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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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월 1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9월3일엔 별도 출입구로 들어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뉴스1

 
 
 

'재판서 밝히겠다' 했는데..3일 정경심 재판서 증언거부
재판과정 보니 조국은 헛똑똑이..정치윤리 책임감 부족해

 
1.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타이밍입니다.  
 
조국은 오늘(3일) 서울중앙지법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부인 정경심 동양대교수 재판입니다. 이 재판의 주요쟁점은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된 자본시장법 위반입니다.  
조국은‘형사소송법상 권리’라며 모든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습니다. (형사소송법 148조=자신이나 친족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2.
조국의 증언거부는 실망스럽습니다.  


펀드관련 의혹이 터져나오던 지난해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이후에도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막상 검찰에 가서는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침묵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법정에 와서도 여전히 입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조국은 법정에서 “진술거부권 행사(증언거부)에 대한 편견이 있다. 법정에선 그런 편견이 작동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본인도 의식하고 있는 것이죠. 증언거부하는 것은 뭔가 사실을 말하면 불리하기 때문일거야..라고들 보통 생각한다는 것을.
 
3.
오늘 법정은 어쩌면 조국에게 진실의 순간과 같습니다.  
미뤄온 진실을 털어놓을 기회였죠. 그러나 증언거부로 약속은 거짓이 됐습니다.  
 
그래서 한때 그를 믿고 지지했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형사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법꾸라지’라고 비난했습니다. (‘법꾸라지’는 법을 요리조리 이용해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4.
아무리 봐도 조국은 헛똑똑이 같습니다.  
겉으로 보자면 완벽 그 자체입니다. 무조건 전교1등 꽃미남, 부자인데 진보세련 스타일까지..
근데 알고보면 부실하죠. 영어 표현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book-smart. 공부는 잘 하는데 정작 알아야할 것들은 잘 모르죠. 세상물정에 어두워 어찌보면 순수하고 바보같죠. 사악한 스타일은 아닙니다.  
 
5.
재판과정에서 재확인된 것은 펀드의혹의 주범이 부인이고 조국은 실제로 잘 몰랐다는 점입니다.  
 
지난 8월27일 공판에 나온 청와대 비서관(조국 인사청문회 준비단 소속)의 증언에 따르면 ‘펀드 관련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모님(정경심) 동생 관련된 것을 보고하니까 (조국이) 깜짝 놀라 진짜냐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저하고 후보자(조국)에게 죄송하다고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오죽했으면 판사가 “(조국도 알면서) 들통나니까 놀란 것 아니냐”고 물었을까요. 비서관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앞에서 (조국이) 전화로 (정경심에게)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정경심이 감추었다는 얘기입니다.  
 
6.
학교에만 있어야할 사람이 정치판으로 나온 게 화근이었습니다. book-smart는 school-smart라고도 합니다.  
 
2010년 친노세력이 폐족(세상에서 폐기된 족속)을 자처하던 시절 조국이 내놓은 ‘진보집권플랜’이란 책은 희망의 신드롬이었습니다. 이어진 전국순회 북콘서트엔 인파가 몰려들어 조국이 앞머리를 쓸어올릴 때마다 환호을 질렀습니다. 조국은 이미 그때 차차기 대권후보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무렵 진보진영의 대권후보는 문재인으로 중론이 모아졌습니다. ‘정치않겠다’던 문재인의 출마선언문격인 자서전 ‘운명’이 나왔습니다. 물론 다음해(2012년) 대선 승자는 박근혜입니다.  
 
7.
박근혜 탄핵으로 문재인은 예상보다 빨리 대통령이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유력 차기후보 조국은 정치판에 들어옵니다. 여전히 ‘정치 안한다’면서..
그런데 조국은 진짜로 준비가 안돼 있었습니다. ‘진보집권플랜’이란 책도 사실은 진보인터넷매체(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의 작품이었죠. 번듯한 간판이 필요한 586핵심들의 조급함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8.
조국은 서툴렀습니다. 사실확인부터 제대로 못했습니다. 판사가 지난 공판에서 ‘펀드 관련 의혹이 터지는데, (조국은) 집에 가서 (정경심에게) 확인도 안하냐’고 물을 정도입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무서워해서였을까요. 아무튼 사태파악이 잘 안됐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자회견을 하다 보니 앞뒤가 안맞습니다. 조카(조범동)는 ‘그냥 펀드를 소개해준 사람’이 아니라 실제 운영자였기에 지난 6월 징역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조국은‘(펀드가) 어디 투자하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정경심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9.
조국은 오늘 묵비권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윤리의 마지노선을 넘었습니다.     
조국은 법정에서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권리’를 설명하는 글을 읽으려했답니다. 판사가 말렸습니다. ‘증인은 검사와 변호사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사람이지, 하고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아무래도 조국은 학교로 돌아가야 맞는 사람 같습니다. 이젠 내 머리 속에서 지워도 될 듯합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