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대책이 있으면, 시장에는 방책이 있었다. 쏟아지는 정부의 규제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거래에 나선 시장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어서다.
아파트 거래량으로 본 규제의 역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 분석
6억 이하 집중, 3억 이하 키맞추기
3830가구로 이뤄진 이 아파트 단지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 건수는 50건이었다. 지난해 순위(44위)와 비교하면 올해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유거상 아실 대표는 “각종 규제로 부동산 시장이 점점 불안해지자, 실수요자가 매매에 나서면서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국토부 실거래 기준으로 가장 많이 거래된 아파트를 보면 규제가 시장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6억원 이하 아파트에 집중된 수요
거래량 1위를 기록한 ‘SK북한산시티’는 실수요자들이 서울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 찾기에 얼마나 골몰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각종 규제로 대출을 옥죈 탓이다.
6억원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 무주택자에게 2%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보금자리론’의 기준 금액이다. 서민ㆍ중산층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적용한다. 대출한도는 3억원(미성년 자녀 3명인 가구는 4억원)이다.
수요가 몰리고 거래가 늘면서 가격도 치솟았다. 전용 84㎡ 기준으로 지난 1월 5억 원대에 거래되던 아파트는 지난 7월 7억5000만원에 팔리며 최고가를 찍었다.
단지 인근의 한 공인 중개업소 대표는 “우이 경전철 솔샘역 초역세권인 데다가 3830가구 대단지인데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실수요자들이 올해 들어 많이 매수해서 가격이 급등했다”고 전했다.
규제 풍선효과 여전
3위인 방학동 ‘신동아 1단지’는 3억 미만 아파트의 ‘키 맞추기’ 현상을 보여준다. 정부는 6ㆍ17대책으로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아파트를 사면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게 규제했다. 그러자 서울 지역의 3억 미만 아파트에 매수세가 몰렸고, 이들 아파트 가격이 삽시간에 오르며 4억대로 일제히 치솟았다.
방학동 신동아 1단지의 경우 전용 70㎡의 매매가가 지난 1월 2억9900만원이었지만 지난달 4억 원대로 껑충 뛰었다. 거래량 4위를 기록한 방화동 ‘도시개발 2단지’도 마찬가지 사례다. 도시개발 2단지 전용 49㎡도 3억대로 거래되다 6ㆍ17 규제 이후 4억대로 올랐다.
집을 살 때(취득세)나 집을 보유할 때(종합부동산세), 집을 팔 때(양도소득세) 내야 하는 세금을 모두 올린 7ㆍ10 대책 이후 서울의 전반적인 아파트 거래량은 확 줄었다. 대신 규제가 덜한 오피스텔 거래가 늘었다. 또다른 풍선 효과다. 7월 10일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집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오피스텔 ‘공덕헤리지움’(51건 거래)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6ㆍ17대책으로 수도권 대부분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자, 투자수요가 오히려 서울로 유입되는 ‘빨대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30일 한국감정원의 월별 매입자 거주지별 아파트 매매현황 통계(신고일 기준)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외지인에게 팔린 서울 아파트는 3457건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았다. 경기도의 경우 3186건 거래돼 6월(3773건)보다 줄었고, 인천 거래량도 1892건(6월)→898건(7월)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