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부터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08년 현대자동차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해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 뒤인 2010년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무 기간 동안 벤젠 등 화학물질에 지속해서 노출된 업무 환경이 A씨의 백혈병 및 사망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해 유족들에게 유족급여 등을 지급했다.
문제는 현대ㆍ기아차 단체협약의 ‘산업 재해 유족 특별 채용’ 조항이었다. 이 회사 단체협약에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규정이 있다. A씨의 장녀는 이를 근거로 채용을 바랐다. 하지만 회사측은 “이 단체 협약은 민법 제103조에 위배돼 무효”라며 채용을 거부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다. A씨 유족들은 회사를 상대로 1억6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및 ‘산재 특채’ 조항을 이행하라는 소송을 냈다.
1ㆍ2심은 이 단체 협약이 사회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 질서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2015년 1심은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족 채용을 제도화하는 단체협약은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와 귀족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나날이 심해지는 청년 취업 문제 등에 비춰봤을 때 이들에 대한 특채가 다른 구직자들의 채용기회를 불공정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다. 2심 역시 금전적 손해배상 부분은 인정했지만, 특별채용 부분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관 11명 “산재 유족 특채, 구직희망자 차별 아니다”
먼저 대법원은 이 단체 협약이 노사가 스스로 합의한 결과물이므로 법원이 개입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산재유족 특채 조항은 현대ㆍ기아차 노사가 단체협약에서 30년 가까이 유지해온 조항이다. 노사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협약을 갱신하며 실천해왔고, 이는 중요한 근로 조건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해석했다. 조항의 목적 역시 산재 근로자의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남게 된 가족을 사회적 약자로 보호ㆍ배려하는 데 있으므로 실질적인 공정을 달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봤다.
특히 대법원은 이 조항이 현대ㆍ기아차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채용 기회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단협상 산재 유족 특채는 기존의 공개경쟁 채용에서 가산점을 주거나 이들을 우선 채용하는 절차가 아니다. 아예 다른 별도의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 대법원은 “이 회사의 사업ㆍ인력 규모에 비하면 산재 유족 채용 숫자는 매우 적다”면서 “특채가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반대의견 “구직자ㆍ변하는 가족관계 고려해야”
구직자들은 능력이나 자격을 갖추면 공평한 절차를 통해 채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기업도 공정하게 채용을 진행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반대의견은 “산재 유족 특채 조항은 이런 책임을 저버리고 구직희망자들의 지위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가족제도가 나타나는 현실과 산재 유족 특채 제도가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만약 비혼 1인 가구가 산재를 당하거나 자녀가 없는 부부가 산재 유족이 됐다면, 이들은 이 조항이 보장하는 채용 혜택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 신체적 결격 사유가 있는 유족 역시 특채 혜택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의견은 이 조항이 “업무 능력과 무관한 채용 기준으로 일자리를 대물림해 구직희망자들을 차별하는 합의”라며 “공정한 채용에 대한 정의 관념과 법질서에 위반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다른 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추후 제기될 수 있는 산재 유족 특채와 관련한 분쟁에서도 특채 협약이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지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지 등을 따져 이 사건처럼 협약의 유효성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또 다른 논란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에 대해서 대법원은 산재 유족 특채와는 다르다고 판단했을 뿐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