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산은)은 26일 이동걸 회장과 정몽규 회장이 만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날 만남에서 산은은 현대산업개발(현산) 측에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산은은 이 제안에 현산이 응하면 금호산업과 협의해 협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동걸 "재협의해보자" 정몽규에 제안
재협의를 하자는 것은 기존 인수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현산이 금호산업과 지난해 12월 17일 맺은 주식매매계약(SPA)은 현산이 금호산업 보유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9억원에 매입한 뒤, 2조17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항공업황이 크게 악화했고, 현 시점에서 당시 SPA 조건을 돌아봤을 땐 아시아나항공이 고평가된 셈이다. 이날 이 회장이 말한 재협의란 결국 인수가격을 다시 따져보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날 회동에서 이 회장이 구체적인 금액을 거론하진 않았다는 게 산은 설명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재협의를 던졌는데 상대가 '노(No)' 하면 딜이 끝나지만 다시 연락을 준다면 협상이 재개되는 것"이라며 "정 회장에게 재협의 가능성을 확인해달라고 말했으니 딜의 불씨가 꺼진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공을 현산 측에 넘겼다는 의미다.
"원하는 조건 정확히 말하라" 정곡 찔렀다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이날 채권단은 현산 측에 '답변을 기다릴테니 정말 당신들이 고민스럽고 걱정하는 부분, 요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얘기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동안 해왔던 '재실사를 하네 마네, 12주 동안 하네 어쩌네' 이런 얘기 말고 인수조건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만 얘기하자는 것이다.
구조조정 업무에 정통한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현산이 그간 재실사를 집요하게 요구해온 까닭은 결국 구주 가격을 인정할 수 없으니 인수가격을 조정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채권단이 자존심을 접고 상대 마음을 헤아려주면서 일을 헤쳐나가는 것이 기간산업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