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모빌은 한때 미국 주식시장과 기업의 선두 주자였다. 2013년에는 시가총액이 4150억 달러(약 492조 원)를 기록하며 세계 최대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2014년의 시총은 446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대체 에너지의 등장 등으로 인해 엑손모빌의 몸집과 위상은 쪼그라들었다. 25일 현재 시총은 172억 달러 수준이다. 한창 잘 나가던 때의 3.85% 수준이다.
몸집과 위상이 약화하며 다우지수에서 엑손모빌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블루칩 클럽'으로 불리는 다우지수는 기업의 규모와 신용도, 성장 지속성과 산업 내 대표성 등을 고려해 추린 30개 기업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CNN비즈니스가 “엑손은 주식 시장의 사생아 처지가 됐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제 다우지수에 남은 에너지 기업은 셰브론 하나뿐이다.
격세지감이라 할 만한 엑손모빌의 쓸쓸한 퇴장은 특정 기업의 몰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CFRA 리서치의 에너지 담당 애널리스트인 스튜어트 글리크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부문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며 “엑손의 퇴출은 그런 변화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비중으로만 살펴봐도 석유를 중심으로 한 기존 에너지 부문에 힘을 잃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우존스 및 S&P500 지수의 분야별 점유율 1위는 단연 정보기술 분야(다우존스 27.63%, S&P500 28.17%)다. 에너지는 11개 분야 중 8위(다우존스 3.14%, S&P500 2.46%)에 불과하다.
서밋 글로벌 투자사의 맷 한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와의 인터뷰에서 “세계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이용을 줄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며 기존 에너지 기업들은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처가 못 된다”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 아부다비의 주요 프로젝트는 태양광 발전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아부다비 정부는 태양광 에너지 프로젝트에 전 세계 최저 수준의 관세를 매기는 특혜를 부여했다.
사우디의 태양광 발전 산업에 뛰어든 건 다름 아닌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고 태양광을 중심으로 하는 재생에너지로 경제 구조를 개편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사우디의 재생에너지 기업인 ACWA 파워의 패디 패드마나탄은 이코노미스트에 “우리 중동엔 석유뿐 아니라 하늘이 주신 쨍쨍한 태양과 강력한 바람이 있다”며 “공짜인 이 원자재를 이용해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