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에 기반을 둔 통치는 억압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서글픈 역사가 그랬다. 서점과 인쇄술 규제는 억압의 또 다른 표현과 다름없다.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건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아는 자를 두려워했다는 뜻이리라. 확신범에게 이보다 위험한 건 없다. 논리가 안 되면 숙청으로 기득권을 지키려 든다. 토론이 있을 수 없고, 다른 의견이 개진될 리 없다. “적폐니 개혁이니 하며 청산을 강조하는 건 따지고 보면 숙청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화 이후 가장 숙청이 많은 정권 아닌가 싶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편 가르기 이념 통치, 국가에 독
갈등, 경제 피폐 등 부작용 만연
규제를 억압 수단으로 쓰면 안 돼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선 소득주도성장론이 출발부터 통계 조작 내지 오류로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 정부가 소주성 기치를 치켜들며 내세운 가장 중요한 논리가 노동소득분배율의 지속적 하락이었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장했다. 한데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의원(미래통합당)이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0년부터 노동소득분배율은 꾸준히 증가했다”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 지적에 “맞다”고 했다. 이 총재는 “그 분들(홍 전 수석, 장 전 실장)이 주장했을 때는 나름대로 다른 논거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도 “한국은행은 원칙대로(분석했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정부 공식 통계인 한국은행의 자료와 정반대였던 셈이다. 경제정책의 뿌리가 허물어진 꼴이다. 이쯤 되면 경제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이유를 추정하기에 어렵지 않다. 왜 정부의 통계 해석이 오락가락하고, 자화자찬과 포장술이 변신을 거듭하며 구사되는지도 짐작할만하지 않는가.
얼마 전 만난 모 기업 대표는 이렇게 한탄했다. “이 정부에 경제 논리가 있는가. 이념만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시장이나 산업현장, 고용 문제를 적과 동지로 나눠 접근하고, 현실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아닌가 싶다. 온 산을 깎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금수강산이 참혹하게 변했다. 그래도 그들의 전통적인 동지가 문제 삼는 걸 못 봤다. 권력자로부터 성추행당한 여성에 대해 정부조차 입을 다문다. 피해호소자라는 희한한 말을 만드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참 편리한 게 이념 기반 정책이다.”
어디 이뿐인가.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성지인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를 위해 역대 정부가 22년에 걸쳐 없애려고 공들였던 청원경찰제라는 유령까지 꺼내 들었다. 하다 하다 국무위원이 판사마저 공격하는 시대다. 논리가 부족하고, 그래서 자신감이 없을수록 ‘탓’하는 데 익숙해지는 법이다. 21세기에 통합 대신 내 편 네 편의 시대를 경험할 줄이야.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