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다음 주 환자 수술과 항암 치료 등을 거의 모두 연기했다. 신규 환자 진료는 거의 올 스톱되다시피 했다. 병원장은 “일상적인 병원의 환자 케어가 무너졌다. 수술을 못 하고, 새 환자를 받는 게 올스톱됐다. 응급 환자 진료 외 일상적 진료는 못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가 수술을 하고 난 뒤 전공의가 환자를 돌보고 연락을 받는 등의 뒷일을 담당하는데, 이런 인력이 없으면 수술을 할 수 없다. 교수 혼자 감당할 수 있으면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할만한 교수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공의 파업에다 코로나 확산으로 의료인력이 코로나 환자 진료에 매달리면서 인력 부족이 더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사는 김모(72)씨는 오는 31일 예정이던 췌장암 수술이 무기한 미뤄졌다. 병원에서는 “전공의 집단 휴진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김씨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건 지난 10일이다. 검사 결과 1.2cm 정도 종양이 발견돼 12~13일 다른 장기에 전이가 있는지 정밀 검사를 받고 이달 31일 수술하기로 했다.
김씨는 부랴부랴 국립암센터나 다른 대형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고 수술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 대학병원은 “전공의 집단 휴진으로 응급 수술 외에 일반 수술 일정을 미루고 있다”고 답했다.
암 환자가 정보를 찾는 네이버 카페 등에는 김씨와 비슷한 사연이 많다. 게시판에는 “항암 치료를 연기했다” “갑자기 휴진 통보를 받았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수술이 밀린 김씨의 아들(38)은 “췌장암은 1년 만에 1기에서 말기로 진행하기도 한다”며 “의료진과 정부가 서로 입장만 얘기하며 싸우는데 누가 맞는지는 몰라도 제발 엄마 수술 좀 받을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파업, 중환자실 점검이 겹쳐 응급실로 오는 암 교통사고 등의 중증환자는 받지 못하게 됐다. 다만 일반 응급환자 진료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중환자실은 정상 운영하지만, 응급실은 중증 아니면 가급적 다른 병원(전공의 수련병원이 아닌 병원의 응급실)으로 의뢰해 보낸다. 또 입원을 줄여서 예약을 미루거나 연기시켰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21일 3차 단체행동을 시작해 이날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가 업무를 중단했고, 22일엔 3년차, 23일은 1·2년차까지 모두 휴진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현황에 따르면 21일 단체행동에는 인턴 38.9%, 레지던트 4년차 55.2%가 참여했고, 22일에는 인턴 35.7%, 레지던트 3년차 27.6%, 레지던트 4년차 28.7%가 휴진했다.
의료진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전망이다. 전임의(펠로)들을 대표하는 대한전임의협의회는 24일,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6~28일 총파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의협 1차 총파업 때는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3836개소 가운데 1만584개소(31.3%)가 사전 휴진신고를 했다. 전공의 무기한 휴진에 이어 전임의, 동네 의원까지 문을 닫을 경우 국민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최 회장은 “(정부가) 4개 의료 정책을 철회하면 금일 중이라도 의협은 파업을 중단하고 즉각 진료 현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며 “시간이 많지 않다. 바로 오늘 4개 정책을 철회해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헌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수도권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논의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정책 철회는 오랜 기간 숙고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된 모든 사항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