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마윈 옆 지켰다 ... 알리페이의 어머니, 누구?

중앙일보

입력 2020.08.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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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의 성공을 말할 때, 늘 함께 언급되는 여성이 하나 있다. '알리바바의 여왕' '알리페이의 어머니'라 불리는 펑레이(彭蕾)다.  
 
펑레이는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 앤트파이낸셜(蚂蚁金服 ·마이진푸)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한 주인공이며, 중국 IT업계에서 인정받는 여성 임원으로 손꼽힌다. 당초 남편과 함께 알리바바 창립 멤버로 사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남편은 중도에 알리바바와 작별했지만, 펑레이는 20년 간 마윈 곁을 지키며 알리바바의 현재를 만들었다. 

펑레이와 마윈 [사진 난두왕]

 

사랑을 위해 창업에 뛰어든 대학 교수

 
펑레이는 1973년 9월 충칭(重庆)에서 태어났다. 저장 공상대(浙江工商大学)에 다닐 무렵 쑨퉁위(孙彤宇)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졸업 후 펑레이는 저장성 재경학원(财经学院) 교수가 됐고, 연인 쑨퉁위는 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남편따라 교수직 내려놓고 알리바바 창업멤버 합류
인재 관리 전문가, 어려움 겪던 알리페이 소생시켜

그러던 어느 날, 항저우 호숫가에서 광고를 팔던 쑨퉁위는 자신보다 언변이 뛰어난 비범한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마윈이었다.

펑레이 [사진 소후닷컴]

 
당시에도 대학 교수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펑레이 역시 그 직업을 통해 안정적인 삶을 꿈꿨다.
 
그러나 쑨퉁위가 마윈의 창업팀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자, 펑레이는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남편과 함께 창업의 길로 나선다. 당시 5년차 교수였던 펑레이는 연봉 수준도 꽤 높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금전적으로도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철밥통'을 던져버린 이 사건은 펑레이의 삶에 큰 전환점이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큰 명예와 부를 쌓는 계기가 됐다.
 

남편과 아내의 엇갈린 행보

 
알리바바 창업 초기, 펑레이는 HR(Human Resources)을 맡았다. 하루는 마윈이 ‘역사적천공(历史的天空)’이라는 영화를 보고 오더니 회사에 소위 말하는 ‘고충 상담 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펑레이는 마윈의 의견을 따랐고, 직원들과 소통을 통해 각자의 업무 상황이나 일상의 어려움 등을 파악했다.  


이를 통해 알리바바는 인재 관리 시스템을 다잡을 수 있었고, 펑레이는 직원들의 고충을 신속하게 처리해 신임을 얻는 계기가 됐다. 나중에는 알리바바 HR 부문 총재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수많은 헤드헌팅 회사에서 고액 연봉을 내세우며 이직을 제안했지만, 펑레이는 모두 거절했다.

쑨퉁위 [사진 바이두바이커]

 
한편, 남편 쑨퉁위는 타오바오(淘宝) 탄생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마윈이 타오바오를 열겠다고 했을 때, 창업팀 구성원 중 거의 유일하게 적극 지지했던 사람이 쑨퉁위였다. 그는 발로 뛰며 타오바오에 입점할 매장을 섭외했고, 온라인 광고로 타오바오를 홍보했다. 덕분에 타오바오의 매출은 쑥쑥 올랐고, 쑨퉁위는 타오바오 총재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7년, 타오바오가 중국 전자상거래 최고 자리에 오른 그 때, 쑨퉁위는 총재 자리에서 물러나 해외 연수를 떠나라는 명을 받는다. 당시 충격을 받은 쑨퉁위는 아내 펑레이가 미리 귀띔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 바이두바이커]

 
이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부부 관계의 위기를 겪었다. 알리바바를 떠난 쑨퉁위는 런던 비즈니스 스쿨(London Business School) 등 MBA과정을 밟으며 휴식기를 거쳐 중국 전자상거래 업계에 복귀한다. 알리바바의 강력한 맞수라 불리는 핀둬둬(拼多多)의 투자자로서다.
 
하지만 펑레이는 남편이 회사를 떠난 후에도 알리바바에 남아 마윈과 함께 일했다. 남편을 따라 알리바바 창업에 뛰어든 아내가 오히려 더 오래토록 알리바바를 지키게 된 셈이다.
 

알리페이 소생시킨 '앤트파이낸셜의 어머니'

[사진 바이두바이커]

 
알리페이로 대변되는 앤트파이낸셜(蚂蚁金服 마이진푸)은 처음부터 잘나갔던 회사가 아니었다. 2010년, 마윈은 알리페이 실적 저조에 통탄하며 과감한 인사를 단행한다. HR 책임자였던 펑레이를 알리페이 대표 자리에 앉힌 것이다.
 
금융 지식에 문외한이었던 펑레이는 대신 구성원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며 회사를 운영했다. 취임 첫날 핵심 관리자들을 모아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직원들의 마음을 얻었다.

펑레이 [사진 바이두바이커]

 
펑레이는 두 가지 업무 원칙을 세웠다. 첫번째는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좋은 팀을 꾸려 직원들의 정서 변화를 시시각각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직접 고객 서비스 담당자를 자처하며 댓글을 수집, 알리페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살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 결과, 마침내 알리페이는 일일 거래액 12억 위안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2019년 후룬 글로벌 유니콘 기업 명단에 따르면, 앤트파이낸셜의 기업가치는 1조 위안으로 세계 1위 유니콘 기업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펑레이는 ‘앤트파이낸셜의 어머니’, ‘알리바바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사진 소후닷컴]

 
펑레이는 지난 2018년 앤트파이낸셜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며, 현재 알리바바 동남아 계열사인 라자다(Lazada) 회장을 맡고 있다.
 
한 때 500위안 연봉을 받던 펑레이는 지난 20년 사이 몸값 400억 위안의 임원으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성공을 두고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합해진 결과라고 평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직원들과 고객의 마음을 세심하게 관리해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불태울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길이 얼마나 멀건 간에, 마음 속에 천진하고 자신만만한 어린 시절의 모습과 뜨거운 가슴을 간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다.” -펑레이-
 
차이나랩 홍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