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전기 안 들어오는 카페서 냉장고 대신하는 물건

중앙일보

입력 2020.08.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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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9)

 
“여러분, 다들 집에서 음식은 어떻게 보관하세요? 당신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아니, 아니… 냉장고에 두는 것 말고요.”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서 특별한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채소, 고기, 유제품, 해산물, 과일 등 식자재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을 텐데 우리는 무작정 냉장고에 넣는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에 우리의 할머니는 식재료를 건조하거나, 염장하거나, 발효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료를 보관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제 지역마다 내려오던 음식저장법에 관한 지혜는 사라져가고 있다.
 
흔히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냉장고 역시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냉장고를 쓰면서부터 실온에 보관해야 할 음식도, 심지어 각종 조미료까지 별생각 없이 냉장고에 넣어버린다. 재료마다 깐깐하게 분류하기도 귀찮고, ‘냉장고는 뭐든 해결해 줄 거야’라는 믿음에 마음도 편하다. 너무 많은 걸 넣다 보니 무엇을 두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 상한 식재료가 부지기수다.
 
음식과 나의 관계는 그렇게 단절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음식을 장기간 보관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이 어디서,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까지 오르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관계의 실종이다. 상품을 소비하고 냉장고에 두기만 하면 되는 편리성이 도리어 우리를 음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만난 특별한 발명가들도 이러한 고민에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비전화(非電化)공방서울’ 출신의 제작자로 ‘솜이’, ‘잇다’, ‘규온’이다(공동체 내에서는 가명을 사용함).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카페, ‘비전화카페’의 전경. [사진 비전화공방서울]

 
그들을 처음 본 곳은 ‘비전화카페’라는 재미난 곳이었다. 서울 도심 지하철역(불광역) 도보 5분 거리에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서 나올 법한 오두막집이 있는데, 여기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아담한 카페 건물은 단체 멤버들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나무로 기틀을 잡고, 볏짚으로 벽체를 만들어 그 위에 황토와 석회 미장으로 마감처리를 했다. 어려운 말로 ‘스트로베일(straw bale)’공법이라고 했다. 짚으로 만든 블록을 중심으로 실내와 외부에 흙을 바르는 형식인데, 볏짚도 사용하지만 억새풀을 사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왕겨를 단열재로 이용해서 말 그대로 친환경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손수 작업하다 보니 투박한 면도 없지 않지만, 분명 공간에서 풍기는 아늑한 맛이 있다.
 
‘非電化’, 문자 그대로 그들은 전기 없이 사는 ‘노 플러그’ 삶을 지향한다. 전기와 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고민하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삶을 실천하는 작은 공동체이다. 이들의 목적은 도시의 인프라 밖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비전화제작자’들은 자신의 실천정신을 담은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그리고 비전화카페는 그들 삶의 방식을 소극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내부에는 전기조명이 없어 한낮에도 약간 어두웠다. 하지만 오일 램프의 따스함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자연채광에, 그리고 한켠에 화덕이 자리 잡고 있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연스럽게 힐링되는 느낌이랄까. 원목 테이블과 선반, 벽을 장식한 책장, 의자 소품 하나까지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가구들과 카페 분위기가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전기를 쓰지 않으니 당연히 카페에는 냉장고도 없었다. 대신 아이스박스처럼 보이는 물체가 눈에 띄었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연결해서 배터리를 사용하는데, 얼음을 얼릴 수는 없지만 박스 내부 온도는 10도까지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자, 먼저 목을 축이세요. 어때요? 물이 참 시원하죠! 10도 정도만 낮춰도 충분히 시원해져요. 굳이 얼음을 찾지 않아도 되죠. 너무 찬물은 건강에도 좋지 않잖아요.” 오늘의 바리스타인 또 다른 제작자 찰스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내가 멀리에서 찾아왔다고 했더니 그는 커피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먼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수돗물을 정화했다. 야자활성탄으로 만든 비전화정수기로 깨끗한 물을 걸렀다. 야자활성탄은 야자껍질을 고온에서 구운 숯인데, 활성탄이 수돗물의 소독부산물인 화학물질을 제거해준다.
 
다음 작업으로, 역시 그들이 개발한 제품 중 하나인 비전화로스팅기를 사용해서 원두를 볶았다. 커피 원두는 공정무역(fair trade)으로 구매했다. 공정무역이란 직거래를 통해 아프리카, 남미 등 저개발국가의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공정한 값을 지급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무역 방식이다. 
 
갓 볶아낸 커피콩은 키질하면서 껍질을 날렸다. 그리고 수동 그라인더에 넣고 원두를 갈았다. 뒤이어 그는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여서 커피를 내리는 사이폰(siphone) 커피를 준비했다. 이 단계까지 오자 그가 바리스타가 아니라 중세 시대의 연금술사처럼 느껴졌다.
 

전기의 도움 없이 만드는 커피. [사진 비전화공방서울]

 
그는 사이폰 커피메이커의 상부 로드에 융필터를 고정한 뒤 원두를 넣었다. 종이 필터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번거롭더라도 융필터를 사용한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하부 플라스크에 물을 붓고 성냥으로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여 가열하기 시작했다. 물이 점차 끓어올라 하부 플라스크에 압력이 차자 관을 통해 뜨거운 물이 상부로 올라갔다. 상부 로드에 있는 커피 가루가 드디어 물과 만나 적셔졌고, 알코올 램프를 끄자 필터를 통해 커피가 여과되어 다시 플라스크로 내려왔다.
 
커피 한 잔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드디어 30분 가까이 정성 들여 만들어진 커피를 영접할 수 있었다. 쉽게 대할 수 없는 커피였다. 마치 시간이 멎은 듯한 동화 속 공간에서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며 그들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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