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을 '졸린(sleepy) 조'라며 무시하던 트럼프 대통령도 해리스에는 극도의 경계감을 표시했다. "미친여자(mad woman)"라는 거친 표현을 쓰면서다.
공화당 인사 궁지로 몬 미국판 '청문회 스타'
송곳 질문 끝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
"남자 신체에 정부가 간섭해도 되나"
낙태문제, 반어적 공격으로 궁지 몰아
트럼프도 "해리스는 미친여자" 경계감
이런 거친 표현 자체가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예, 아니오로 대답해 주십시오"
해리스 지명에 언론은 '첫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 후보'란 타이틀을 앞세웠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해리스에 대해 가장 기대하는 건 피부색이나 성별이 아니다. 그보단 전투력, 그리고 예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TV토론에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검사 출신 해리스는 상원 청문회 때마다 송곳 질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상대를 궁지로 몰고 간 후 눈을 쳐다보며 "그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아니오로 대답해 주십시오"라고 반복해서 물어보는 게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 닥치면 후보자들은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치를 떨게 한 캐버노 대법관 청문회 때도 그랬다. 해리스는 캐버노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가 운영하는 로펌의 직원 중 누군가에게 로버트 뮬러 특검에 관해 특별 상담을 해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뮬러 특검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캐버노는 "글쎄요, 실제 있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물어보는 건가요"라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해리스는 "제가 드린 질문은 대답하기에 매우 명확한 것"이라며 "예, 아니오로 대답해 달라"고 요구했다. 캐버노가 한 번 더 얼버무리려 하자 해리스는 다시 한번 "예, 아니오로 대답해주시죠"라고 몰아세웠다.
이어 주제를 바꿔 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낙태 문제다. 그는 "후보자는 정부가 남자의 신체에 대해 결정권을 갖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법을 떠올릴 수 있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남자에 대해 그럴 수 없다면 여성의 낙태 역시 정부가 결정해선 안 된다는 걸 반어적으로 물은 것이다. 낙태 문제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가진 캐버노였지만 쉽사리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곤란한 내용이었다. 해리스는 여지를 주지 않고 다시 질문을 좁혀갔다. "여성이나 남성 중 누구에게는 그렇게 해도 되는가". 결국 캐버노는 "지금은 아무 의견이 없다"며 사실상 손을 들었다.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은 당시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해리스는 캐버노 외에도 윌리엄 바 법무장관 등 공화당 측 지명자들을 궁지로 모는 청문회 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술렁이는 공화당…"펜스를 껌처럼 씹은 뒤 뱉을 것"
공화당 인사들도 이런 '위력'을 인정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공보국장 출신 정치평론가 니콜 월리스는 MS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해리스가 (지난해 청문회에서) 윌리엄 바 법무장관을 추궁했던 일을 떠올리며, 해리스가 펜스를 껌처럼 씹은 뒤 뱉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해리스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폴리티코와 인터뷰한 민주당 관계자는 "조(바이든)는 밝은 조명이 있는 큰 무대에서도 상대를 생선처럼 내장까지 발라버릴 수 있는 사람을 원했고, 해리스는 그걸 증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 펜스 차례"라고 덧붙였다.
'전사' 해리스 지명에 하루 308억원 몰려
미국 금융과 경제를 주도하는 월가와 실리콘밸리도 해리스를 반기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가와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부유세'를 정책으로 내세우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보다 그나마 중도적 성향인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선호했다. 해리스 지명 직후 '극좌파'라고 공격한 트럼프 캠프와는 좀 다른 분위기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