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파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자”
민추위는 1985년 6월 의류제조업체 대우어패럴 노조를 중심으로 구로 동맹 파업이 벌어지자 지원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 부장판사는 당시 학내홍보와 선전을 맡았고, 대자보를 붙이거나 파업농성을 지원하자는 전단을 각 단과대학 사무실에 배포했다. 민추위는 지원 시위에 그치지 않고 농성 현장에 직접 침투해 노동자들에게 음료수와 음식물을 나눠줄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 부장판사는 각목과 플래카드, 성명서 등의 준비를 맡았다. ‘독재 타도’ 구호를 새겨 넣은 머리띠와 어깨띠, 방어용 각목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장판사에게 국보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항소 이유 “민족민주혁명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
먼저, 이들이 벌인 민족민주혁명은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운동 투쟁 정신을 계승하고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상의 모순점을 반성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념이라고 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북한의 남조선 전략의 일부분이 민족민주혁명 이론과 유사하다며 자신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했으니 이는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생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할 필요성을 절감해 집회에 참여한 것이므로 그 의도를 생각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검찰은 오히려 1심이 선고한 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맞섰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민족민주혁명 이념을 학원가와 노동현장에 확산시켜 1984년 이후 10여 차례의 대규모 폭력시위를 배후 조종했으니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사회 내부의 분열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2심서 유일하게 집행유예 선고받은 이흥구
민추위, 박종철 열사 사건과도 연관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 발표로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박종철 열사도 민추위 관련 사건이다. 당시 박 열사는 민추위 수배자 소재 파악을 위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