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묵인·방조 등 폭넓은 조사”
인권위 결정에 따라 서울시는 15년 만에 인권위의 직권조사를 받게 됐다. 앞서 2005년에는 8개 국가기관과 16개 시·도, 43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고용차별 실태 관련 직권조사에 포함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직권조사는 서울시가 단독으로 조사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는 게 시청 안팎의 분위기다. 직권조사는 피해 당사자 등으로부터 진정이 없더라도 인권위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할 경우 실시하는 것으로 서울시가 사실상 강제적인 조사를 받게 됐음을 의미한다.
압수수색 등 강도 높은 수사 어려워
앞서 서울시는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이 무위로 돌아간 후 "직권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인권위 안팎에선 "이번 조사는 서울시의 협조에 따라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퇴직한 박 전 시장의 최측근 등이 조사를 거부·기피할 경우 검찰 수사와 같은 강제력을 동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검찰의 긴급체포·압수수색과 같은 강도 높은 수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당한 이유 없이 진술서 제출을 거부하거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는 등 조사를 기피해도 1000만원 벌금형에 그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63조) 인권위 관계자는 “서울시가 제출하는 자료부터 순차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며 “만약 조사가 여의치 않을 때는 검찰 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조사에 협조적으로 응하지 않을 경우 인권위 조사만으로는 사건 경위를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중요 참고인의 소재가 불명인 경우에는 조사부서가 조사를 중지할 수 있는 점도 관건이다. 박 전 시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한 전 비서실장 등 이른바 ‘6층 사람들’은 박 전 시장의 사망과 함께 법에 따라 퇴직처리된 상태여서다. 인권위 관계자는 “성희롱 사건의 경우 공무원이 아닌 사인(私人)을 대상으로도 조사가 가능한 '차별행위'에 해당돼 조사 범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적극 협조"…여가부 지적엔 사실상 '반박'
하지만 30일 여성가족부의 현장점검 결과에 따르면 박 시장 사건이 처음 알려진 지난 9일 이후에도 서울시는 피해자와 관련해 구체적 보호·지원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여가부의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점검단’은 “서울시가 피해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거나 피해자 고충 상담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조력자 지정, 인사상 불이익 방지 조치 등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는 해명자료를 내고 사실상 여가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날 나온 입장문과 해명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여가부의 주요 개선 요청 사항을 겸허히 수용하고 향후 개선대책 수립에 반영하겠다”면서도 “성추행 의혹 이후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7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시설 운영과 사업비 지원을 통해 피해자에게 정신적 치료와 심신·정서 회복을 위한 치료 회복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여성단체에 대한 사업비 지원은 박 전 시장 사건이 있기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던 사업”이라고 했다. 박 전 시장에 대한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기간에도 이미 해당 사업은 시행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새로이 시작된 사업이 아니다”라며 “여가부의 권고사항을 반영한 대책은 9월경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