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박원순 사태 20일이 지나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다.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문 대통령은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됐음에도 재수사를 지시할 만큼 정적들의 ‘성범죄’엔 추상같았다. 그러나 안희정·오거돈에 이어 박원순까지 여당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런 문 대통령의 ‘선택적 페미니즘’의 뿌리엔 탁현민이 있다.
여당발 권력 성범죄 철저히 외면
비난 아랑곳 않고 탁현민도 복귀
‘우리편=면죄부’ 고착 우려 커져
탁현민은 지난해 JTBC 토크쇼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당신을 쓰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12년 전 내가 쓴 글의 일부가 여성을 비하 혹은 모욕했다. 인정한다. 어쩌겠나. 12년 전 한 일을. 그런데 12년 전 썼다는 그 책으로 12년 후의 내가 평가받아야 한다면 온당치 않다고 본다. 그 평가는 인사권 가진 분(문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 본다. 그분이 그렇게 평가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125년 전 동학혁명 유족들에게까지 수당을 지급할 만큼 ‘과거사’라면 눈에 불을 켜는 민주당 정부의 핵심인사가 “12년 전 쓴 책으로 지금의 나를 평가 말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왜 2017년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똑같이 12년 전(2005년) 쓴 책 내용(돼지 발정제)을 문제 삼아 “원천적인 공직 무자격자”라 맹공했나. 똑같은 ‘12년 전 과거사’를 두고 “나는 건드리면 안 되지만 너는 대가를 치러야 해”란 얘기 아닌가.
탁현민은 방송에서 “사람 평가는 삶 전체를 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그렇게 한 것 같다”고도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문 대통령은 자신 밑에서 일하는 공직자의 성추문에 대해선 국민 다수와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게 아닐까 우려된다. “선하고 순수한 내 부하들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낙마시키려 하니 지켜줘야 한다”는 인식이 아닐는지 걱정스럽다.
이런 ‘선택적 페미니즘’의 대가는 혹독하다. 문 정부 3년간 성매매·성폭력·성희롱 등으로 징계받은 공무원이 682명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징계받은 공무원 총수(1049명)의 65%나 된다. 민주당 시의원들의 성 추문도 가관이다. 남성 시의원이 동료 여성 의원을 성추행·성희롱한 사건이 잇따라 터져 제명 당하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한 남성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여성 의원에게 다가가 “너, 나와 간통했지. 기자들 찍으세요”라고 소리쳐 회의가 무산되는 막장극까지 터졌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어디 가겠는가. 민주당 소식통의 말이다. "시민단체 출신 의원들이 가장 권위적이고, 회식 자리에서 가장 추태를 부리며 노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보좌진이 고통을 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여성 보좌진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잘릴 우려가 있고, 나중에 다른 의원실도 가야하는데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어 다들 입 다물고 버틴다. 정권 초기 '미투' 정국 때 이런 현실을 폭로하고 의원실을 나간 여성 직원이 있었는데 그뒤 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게 살아야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 시장’ 후보로 나와 득표율 4위(1.5%)에 오른 신지예(30)의 일갈이 정곡을 찌른다. “저 사람들(문 대통령·민주당) 편만 되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보낸 결과죠.”
문 대통령부터 선택적 페미니즘을 버리고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탁현민을 경질해 비뚤어진 성 의식을 가진 이는 공직자 자격이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성범죄자는 피아 구분 없이 엄하게 처리하고. 자기편에서 성범죄자가 나오면 대통령이 앞장서 사과해야 한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급락했다. 핵심 지지층인 여성과 청년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결과다.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