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검장 출신의 법조계 인사가 농반진반으로 건넨 말이다. 고등검찰청은 한직(閑職)으로 분류된다. 항고 사건을 주로 처리하면서 일선 수사의 잘잘못을 따질 뿐 검찰 권한의 핵심인 수사권, 기소권을 행사하는 기관은 아니라서다. 이 인사가 고검장의 역할을 자조적으로 묘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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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위 권고안 현실화 땐
총장 수사지휘권 고검장 이관
이, 승진설·유임설 함께 나돌아
참여연대 “앞뒤 안 맞는 안” 비판
서울고검장은 기타 5개(부산·대구·광주·대전·수원) 고검장과는 차원이 다른 자리다. 산하에 서울중앙지검과 서울 동·남·북·서부의 4개 재경 지검 등 핵심 검찰청을 모두 거느리고 있다. 중요 사건 수사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이들 지검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는 검찰총장에 버금가는 실권이다.
권고안의 함의는 결국 친정권 성향 검사들로의 검찰 권력 이동이다. 이 지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척점에 서 있는 상징적 인물이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인 그는 현 정권하에서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과 형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핵심 요직을 독차지했다. 지난 1월 중앙지검장 부임 이후에는 사실상 추 장관의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사법연수원 동기(23기)인 윤 총장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이 지검장이 수사지휘권을 보유한 서울고검장이 되면 윤 총장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직권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 윤 총장의 ‘식물총장’ 전락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변수는 이 지검장 유임설이 함께 나돌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검장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채널A 사건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 사전 인지 및 외부 유출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지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 지검장이 아니더라도 ‘친정권 성향의 검찰총장 대행’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 할 검찰 간부는 즐비하다”며 “정권 입장에서는 윤 총장 축출 없이 검찰 권력을 바꿀 수 있는 권고안이 매력적일 테고, 여당의 압도적 의석수를 고려하면 (권고안 시행의 전제조건인) 법 개정에도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법무부는 28일 “권고안을 바탕으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심층적인 검토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혀 법 개정 작업에 착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권고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대표적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총장 권한을 분산하자면서 법무부 장관에게 구체적 수사지휘권까지 주자는 건 앞뒤가 맞지 않으며 생뚱맞다.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는 고검장에게 수사지휘권을 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30일 검찰인사위원회를 열고 당일이나 다음 날 인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윤 총장 측근인 조상준 서울고검 차장(검사장)이 28일 사의를 표명해 공석인 검사장급 이상 직위는 11자리로 늘어났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kaila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