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김유랑)는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집 관리인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기소된 A씨(60)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알코올 중독과 조현병 치료 이력을 들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살해 의도가 있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성탄절 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추적]
불 질러 집관리인 숨지게 한 혐의
문 앞서 흉기 들고 못 나오게 막아
피고인 "월세 독촉에 홧김에…"
변호인 "알코올중독·조현병탓" 주장
재판부 "심신미약 아냐…살해 의도"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5월부터 월세 25만원을 내며 이 집에서 살았다. A씨와 B씨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60만원 정도의 생계급여를 받으며 생활해 왔다고 한다. A씨는 사건 당시 석 달 치 월세(75만원)를 밀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사건 당일 라이터를 이용해 천 조각에 불을 붙여 B씨 방 앞에 둔 것으로 조사됐다. 겨울에 얼지 않게 보일러 관을 감싼 헝겊을 불쏘시개로 삼았다. 집이 낡은 데다 문과 창틀 등이 나무로 만들어져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남동생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지만, B씨는 방 안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방과 화장실에 창문이 있었지만, 방범용 쇠창살이 설치된 데다 너무 좁아 탈출하기 어려웠다. 부검 결과 B씨 사망 원인은 '기도 폐쇄에 의한 질식사'였다. A씨는 불길이 집 전체를 뒤덮은 뒤에야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도주한 A씨는 범행 이튿날 오후 3시께 전주시 완산구 한 전통시장을 지나가다가 그를 알아본 동네 주민 2명에 의해 붙잡혔다.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경찰에서 "나는 월세를 다 줬다고 생각했는데 B씨가 '밀린 월세를 내라'고 다시 독촉했다. (범행 당일) B씨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와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했는데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방화 혐의는 인정하지만, 계획 범행은 아니다"는 취지다.
A씨는 법정에서 "범행 당시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심신 미약은 마음이나 정신의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형법에서는 형 감경 사유가 된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은 알코올 의존 증후군(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정신 감정 결과 조현병 등 정신 질환 증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점 ▶충동적이 아니라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CCTV가 없는 이면도로를 통해 도주한 점 ▶수사관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점 등을 토대로 심신 미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 않은 점, 유족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정신과적인 병력이 범행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점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했다.
A씨는 27일 현재까지 법원에 항소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